[커버스토리] 인터넷 기술에 사활 걸린 IT업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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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보기술(IT)업계에 특허분쟁이 핫이슈다. 핵심 원천기술에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BM)까지 안걸리는 분야가 없다. IT업계가 자신들의 원천기술을 상품화 해 지속적인 수입원을 마련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윤동섭 특허법률사무소의 남희섭 변리사는 "IT특허 관련 분쟁이 통신이나 인터넷의 원천기술은 물론 BM까지 분쟁범위가 넓어지고 있어 특허전문가가 극히 부족한 실정" 이라고 말했다.

◇ 비상 걸린 업계〓SK.LG.신세기 등 국내 통신업계는 최근 이동통신 단말기에 쓰이는 무선 인터넷 기술방식인 '왑(WAP)' 서비스를 놓고 특허 비상이 걸렸다. 얼마전 미국의 오픈웨이브.모토로라.노키아 등 WAP 기술을 보유한 외국 업체들이 합동으로 세계 각국에 특허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해 앞으로 로열티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휴대폰 업체들은 현재 가입자 수에 따라 로열티를 내는 무선 인터넷 사업이 적자여서 외국업체의 특허권 행사가 강화되면 서비스 자체가 어려워질 정도다. 업체측은 "WAP 특허권이 행사되면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고 말했다.

국내 업체가 기술을 주도하는 컴퓨터 음악파일(MP3)시장도 특허 문제로 한바탕 격전을 벌이고 있다.

원천기술 업체인 엠피맨닷컴은 일본 소니사와 함께 최근 특허 등록을 마친 뒤 다른 MP3 제조업체들에 특허권 행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소 전문업체 모임인 KPAC는 특허 등록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다. KPAC측은 "엠피맨닷컴 특허는 너무 포괄적이라 이를 인정할 수 없다" 며 "만약 이 특허를 인정할 경우 예상되는 공급가 3%를 로열티로 내야 하는데 이는 MP3 수익의 절반에 달해 회사문을 닫아야 할 판" 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업계도 BM특허 분쟁으로 난리다. e-메일로 보내면 이를 편지나 엽서에 담아 배달해주는 인터넷 우편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사이버링크는 경쟁업체인 월드포스팅이 자사의 BM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의신청을 조만간 제기할 움직임이다. 이에 월드포스팅은 개념은 비슷하나 구현 방법이 달라 새로운 특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디지털TV.다기능비디오디스크(DVD).PC운영체제 등 국내 산업과 밀접한 국제표준 특허분쟁이 미국과 유럽.일본 등 국가나 업체 사이에 치열하다.

◇ 특허 대책〓국내에서 일고 있는 특허분쟁은 로열티를 낮추든가, 일정분의 범칙금을 내든가 하는 형식으로 1~2년 내에 끝날 사안들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온갖 국제특허분쟁에 휘말릴텐데 그 대책이 있느냐는 점이다.

IT분야는 특허를 먹고 산다고 할 정도로 기술변화가 빠르고 그만큼 특허가 갖는 시장파워가 세다. 특히 국제표준과 관련된 특허는 국가 정책을 좌우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IT원천기술, 핵심기술 특허가 거의 없는 특허빈국(貧國)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99년 특허출원이 8만건이나 되지만 국제표준과 관련된 것은 한두건에 불과하다" 며 "아무리 많은 상품을 외국에 내다 팔아도 로열티로 막대한 비용이 다시 해외로 나간다" 고 지적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성원규 이사는 "국내 민간연구소가 7천개를 넘고 연구조합들도 크게 늘어나 연구개발력은 충분하나 기업은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정부가 세계표준기술.미래기술 등을 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이원호.원낙연 기자llh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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