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막고, 산 깎고, 물은 썩고 … 몰상식 캠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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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계곡 옆 배수관에서 오수가 나오는 경기도 남양주 A캠핑장(왼쪽). 계곡 물에 둑을 쌓아놓은 남양주 C캠핑장. [이정봉 기자]

지난달 초 가족과 함께 경기도 남양주의 A캠핑장을 찾은 손모(45)씨는 불쾌한 경험을 했다. 캠핑장 오른쪽에 지어진 화장실을 들렀다 20여m 떨어진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심한 악취를 느낀 것이다. 계곡 쪽 경사면에는 지름 10㎝의 배출구를 통해 시꺼먼 폐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씨는 “방금 발을 담그고 손을 씻은 계곡물에 오수가 섞였다고 생각하니 즐거운 기분이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지난달 28일 이곳을 방문해보니 가뭄 때문에 말라붙은 계곡으로 오수가 흘러들고 있었다. 고인 오수 웅덩이엔 벌레가 들끓었고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계곡을 끼고 조성된 이 캠핑장은 전나무 숲이 장관을 이뤄 캠핑동호회 사이에서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오폐수 정화 시설은 갖추고 있지 않았다. 이곳 주인 홍모(75)씨는 “오수 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오수는 걸러서 버린다”고 주장했다. 캠핑동호회 관계자는 “전국 캠핑장을 방문해 봐도 제대로 된 오폐수 정화 시설을 갖춘 곳은 없다”며 “관리 규정이 없는데 캠핑장이 자비를 들여 갖출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 훼손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28일 방문한 남양주의 B캠핑장은 숲을 일부 깎아내면서 20m 이상 높이 자란 전나무 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무 기둥엔 굴삭 장비가 흙을 파내면서 생긴 생채기가 고스란히 남았다. 이곳 주인 김모(50)씨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캠핑 부지를 더 확보하기 위해 흙을 파냈다”며 “산을 조금 깎는데 시청에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계곡물을 마음대로 막은 곳도 있었다. 남양주에 있는 C캠핑장은 계곡에 20여m 간격으로 바윗돌로 둑을 쌓아 수영장처럼 만들어 놓기도 했다. 가뭄이 심해지면서 물이 고인 곳은 녹조가 심하게 끼어 있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정모(45)씨는 “물놀이를 즐기기 위한 손님을 위한 배려”라고 말했다.

 기자가 둘러본 수도권 사설 캠핑장 다섯 군데 중 세 곳에서 이 같은 환경 훼손 사례가 발견됐다. 캠핑전문출판사 ‘꿈의 지도’에 따르면 캠핑장은 2010년 302개에서 올해 602개로 2배 증가했다. 업계는 펜션·리조트·식당 등이 조성한 곳까지 포함하면 1000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캠핑아웃도어연구회에 따르면 지자체·국립공원이 조성한 곳이 아닌 사설 캠핑장은 전체의 75%로 파악된다.

 캠핑 붐을 타고 무분별하게 생겨난 사설 캠핑장의 도를 넘은 장삿속 때문에 캠퍼들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7년 경력의 캠퍼 이모(35)씨는 지난 주말 강원도 영월의 한 캠핑장에 들렀다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캠핑장 업주가 텐트에 딸린 천막이 옆자리를 침범했다고 두 자리의 요금(한 자리당 3만원)을 요구한 것. 이씨는 “평소 50동을 칠 수 있는 공간인데 여름 성수기에는 두 배의 손님을 받는다”며 “자리가 워낙 좁아 텐트를 제대로 칠 수 없는데도 조금만 자리를 차지하면 두 배 요금을 요구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5년 경력의 캠퍼 조근상(42)씨는 “사업자등록이 돼 있지 않은 캠핑장은 현금을 요구하는데 이들이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겠느냐”고 말했다.

 환경단체 ‘생명의 숲’ 최정원 간사는 "캠핑장이 위치한 곳은 계곡과 숲 등 환경 보호가 필요한 곳”이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설립부터 사후 점검까지 꼼꼼히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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