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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주주 정부 따돌리고 이름 바꾼 대한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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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대한생명은 한국 최초의 생명보험회사다. 1946년 순수 국내 자본으로 설립됐다. 대생은 79년 보유계약액 1조원 돌파, 85년 63빌딩 준공 등 생명보험의 역사를 써왔다. 영문 이름도 한국을 상징하는 ‘Korea Life Insurance’다.

 이런 대한생명의 이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대한생명은 지난달 29일 주주총회를 열고 한화생명으로 이름을 바꾸는 안건을 의결했다. 2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끝까지 반대했지만, 외국인 주주와 기관투자가를 끌어들인 한화 측이 70% 넘는 찬성표를 모아 통과시켰다.

 한화 측은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이름 바꾸기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화의 7개 금융 계열사 가운데 대생만 이름이 달라 통합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속내는 좀 다르다. 김승연 회장은 2~3년 전부터 대생에 한화 이름을 달고 싶어했다. 게다가 올해는 한화그룹의 모체인 한국화약 탄생 60주년, 대한생명 인수 10주년을 맞는 해다.

 최대 주주가 회사 이름을 바꾸는 거야 뭐랄 수 없다. 그러나 대생의 경우는 좀 다르다. 대생엔 공적자금이 3조원 넘게 들어갔다. 정부 지분이 24.7%나 있다. 정부로선 이 지분을 팔아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해야 한다.

 예보는 한화 측의 집요한 사명 변경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해 왔다. 66년간 고객에게 친숙해진 이름을 바꾸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브랜드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은 결국 납세자가 부담하게 된다.

 한화 측이 정부를 따돌리고 사명 변경을 강행한 것도 문제다. 예보의 핵심 관계자는 “한화가 주총에서 표대결을 할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3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가, 게다가 정부가 2대 주주로 있는 회사가 국민·정부의 사전 동의 없이 이름을 바꾸리란 생각은 못 했다”고 말했다.

 공적자금 투입·관리·회수를 맡고 있는 예보도 할 말은 없다. 한화가 사명 변경 안건을 다시 올린 건 지난달 8일이다. 주총까지는 20여 일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때부터라도 한화 측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사명 변경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명 변경으로 대생 기업가치가 떨어질 경우 예보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