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끝없는 '마지막' 현대 지원

중앙일보

입력

밑빠진 독에 붓는 물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현대 지원을 보면 답답함과 의혹을 금할 수 없다. 엊그제 채권은행들은 또다시 현대 계열 3사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현대전자에는 3천억원의 만기를 1년 연장하고 약 20억달러의 자금한도를 연말까지 보장키로 했다.

건설에는 4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서주며, 석유화학에는 기존여신 6개월 연장에다 1천1백50억원을 추가지원키로 했다. '현대 살리기' 에 총력을 다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경제현실을 감안할 때 현대의 붕괴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정부 판단도 이해하지만 그 절차와 방법에 원칙도, 종합 플랜도 없이 질질 끌려만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현대를 겨냥한 산은의 회사채 신속인수가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이렇듯 고강도 처방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됐는지 알 수 없다.

정부.채권단은 지금까지 수차 '마지막 지원' 을 되풀이했다. 이번이 다섯번째다. 과연 이번 지원이면 정말 현대가 회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정부는 불과 열흘 전 4대 개혁 성과 발표 때 천명한 '상시적 퇴출시스템'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초래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정확한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전망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없이 일단 '살리고 보자' 는 데만 급급하다.

이러니 계속 현대 페이스에 말려들고 지원의 효과도 제대로 안 나는 것이다. 현대건설만 해도 엄청난 지원이 나간 지금에야 실사한다고 난리인데 만약 감당하기 어려운 분식(粉飾)과 부실이 드러나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현대측 자구(自救)나 경영진에 대한 책임추궁에는 극히 미온적이다. 고작 "현대가 필요하다면 출자전환 동의서를 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는 정도다. 지원 배경에 의혹과 형평성 시비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이대로 가면 은행 부실→공적자금 투입→국민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둘러 정확한 실태를 파악한 후 지원 여부를 재검토,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부실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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