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추문만 나오면 펄펄 날았던 아주리 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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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피를로(左), 부폰(右)

이탈리아 축구대표팀에 위기는 곧 기회다. 승부조작 사건이 터질 때마다 똘똘 뭉쳐 우승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가 다음 달 2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올림픽 경기장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44년 만에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이탈리아는 유로 2012 개막 직전 자국 리그 세리에A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며 주전 수비수 도메니코 크리스토를 잃었다. 검찰은 대표팀 훈련을 하던 크리스토를 훈련장에서 체포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몸을 잔뜩 낮췄다. 대회 개막 직전까지 인터뷰를 자제했다. 대회 중에는 ‘승부조작’ 관련 질문을 일절 받지 않았다. 폴란드 크라코프의 산골에 캠프를 차리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선수들 표정에서는 매 경기 비장함이 느껴졌다.

 이탈리아는 1980년 자국 리그가 마피아 조직에 의한 승부조작에 휩싸인 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정상에 올랐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승부조작 사건 직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승부조작이 대표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체사레 프란델리 이탈리아 감독은 팀이 어려울수록 고참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백전노장 안드레아 피를로(33)와 잔루이지 부폰(34·이상 유벤투스)을 중심으로 위기를 헤쳐 갔다. 피를로는 조별리그 스페인과 크로아티아전에서 각각 1도움과 1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부폰은 잉글랜드와의 8강 승부차기에서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냈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는 조직력이 빛났다. 상대 핵심 선수를 서너 명의 수비수가 달라붙어 철저히 막고 짧고 긴 패스를 섞어 역습을 했다. 독일 공격수 마리오 고메스는 이탈리아의 협력 수비에 막혀 45분 만에 벤치로 쫓겨났다.

 이탈리아는 대회 직전까지 우승후보가 아니었다. 영국 베팅사이트 ‘윌리엄힐’은 배당률 15배를 책정하며 16개국 중 6위 전력으로 평가했다. 프란델리 감독은 “선수들이 어려운 순간에 더욱 단결했다. 팬들은 이탈리아 유니폼을 향해 존경심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예프(우크라이나)=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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