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人관리' 못하면 끝장!

중앙일보

입력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인터넷 위에 사람이 있다''. 이 같은 두 개의 문장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는 누굴까. 노상범 홍익인터넷(http://www.hongik.com) 사장(35)은 이런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그에겐 사람이 참말 꽃보다 아름다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의 CEO 자리를 선뜻 전문경영인(전 한국노벨 사장인 권오형씨)에게 넘기고, 신규사업담당 이사로 스스로를 ‘강등’할 수 있겠는가. 경영권에 집착해 싸움판을 벌이는 한국 재계 현실에서 그의 경영권 이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연말인가 싶다. 노사장, 아니 노이사는 듣도 보도 못한 직책을 하나 만들었다. CPO(Chief People Officer)였다. 말 그대로 ‘인력담당 최고책임자’를 일컫는다. 홍익인터넷의 ‘들어오고 나가는’ 인력을 전담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에겐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했다.

그는 당시 “지금까지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며 “벤처기업에게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홍익대 영문과에 입학하고 난 직후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길에 나선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안해본 일이 없다”. 말 그대로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했다. 보험외판원,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 길거리에서 목걸이를 파는 잡화상까지. 직업을 열거하면 30여 종에 이른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30여 종의 삶을 살면서 여러 번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 실패의 대부분은 ‘사람’에게서 비롯됐다고 되뇌인다.

그는 지난 9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백수(?)였다. 학교도 휴학한 터라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온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었다. 그때 우연히 EBS(교육방송)의 한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이거다”라는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당시 프로그램에서는 “인터넷이 앞으로 사회에 급속도로 퍼져 생활혁명이 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비명을 내지르고 지난 97년 홍익인터넷을 만들었다. 달랑 친한 친구 한 명과 함께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웹 에이전시(Web Agency)였다. 웹 에이전시는 쉽게 말해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장사를 하는 업체이다. 그는 이를 두고 ‘청바지 장사’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골드러시 때 금광을 찾는 것과 함께 질기고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청바지 장사’가 호황을 누린 것을 빗댄 표현이다.

99년에 직원은 40여 명으로 늘어났다. 홍익인터넷이 한국 웹 에이전시의 대표업체로 부상했다.

동종업체인 넷퀘스트를 인수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체이스 캐피탈로부터 1백2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유치하는 경영수완도 발휘했다. 현재 직원은 1백 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는 늘상 “벤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회사규모가 커지면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고 스스로 강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착이 때론 화(禍)를 불러온다는 사실과 버림이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CEO자리를 버림으로써 홍익인터넷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진 셈이다.

전문경영인의 경영과 그리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발굴….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그는 또 하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 휴학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제적되었던 홍익대 영문과에 복학하게 된 것. 마지막 학기만 남겨놓고 있는 그는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어린 후배들과 나란히 교정을 거닐면서 그들의 생각을 배워볼 요량이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무엇과 부닥치는 즐거움을 간직하고 즐기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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