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석기, 지금이 사퇴해야 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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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가 무너지면 줄줄이 무너진다”는 게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주장이지만 이 의원은 이쯤 해서 물러나는 게 옳다. 이 의원이 무너지면 그와 함께했던 궤변과 꼼수, 거짓말과 말 바꾸기도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경선 부정이란 사다리를 타고 정치 무대에 오른 이석기 의원이 지난 두 달간 보여준 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는 ‘경선 부정이 아니라 경선 부실’이라는 언어 유희를 벌이면서도 2차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정작 “당 비례대표 경선은 현장투표와 온라인투표 모두 부정을 방조한 부실선거였다”는 2차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말을 바꾸고 있다.

 이 의원은 어제 의원직을 사퇴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2차 보고서를 보고 사퇴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 의원은 예의 싱글거리는 미소를 보이며 “그때 얘기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진상조사위원장도 부실하다고 말씀할 만큼 객관성이 결여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차 보고서는 이석기파와 강기갑파 등 각 세력이 합의해 구성한 11명 진상조사위원회가 8대2 다수결로 채택한 것이다. 이 의원이 증명처럼 들이댄 김동한 진상조사위원장은 이석기와 같은 옛 당권파로 제 뜻대로 결론이 나지 않자 위원장 자리를 사퇴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천연덕스럽게 약속하고 엉뚱한 말로 논지를 흐리고 궤변으로 거짓말을 가리려 해도 국민에게 부정 경선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

 이 의원은 강기갑 당 비대위원장이 사퇴를 요구하자 “새누리당의 대선 프레임에 걸린 거다. 내가 무너지면 줄줄이 무너진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이석기가 무너지면 이석기만 무너질 뿐이다. 이석기가 무너져야 통합진보당은 궤변당, 종북당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 것이고, 민주당은 야권통합의 손을 내밀 것이다. 그의 용어를 따르자면 이석기가 무너져야 야권이 새누리당의 대선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고비마다 사퇴 시기를 놓쳐 안타까움을 샀던 이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물러날 시점이다. 부끄러운 모습을 얼마나 더 보여주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