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퓨전의 맛.. 팝+ 오페라='팝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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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성악과를 졸업하면 남자는 택시 운전수, 여자는 비서로 취업한다는 농담이 나돈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일이 그만큼 어렵단 얘기다. 그러다보니 오페라 무대 진출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예 뮤지컬이나 크로스오버로 방향을 바꾸는 성악가들이 늘고 있다.

물론 취업난만이 원인은 아니다. 새로운 수요를 모색하려는 클래식 음반산업의 몸부림과, 어려서부터 팝음악을 들으며 살아온 신세대 성악가들의 성장배경도 주요한 원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크로스오버 붐은 이제 '팝페라(popera)' 로 이어지고 있다.

크로스오버가 오페라 가수와 팝가수, 록밴드와 오케스트라가 한 무대에 서는 '만남' 이었다면, 90년대 후반부터는 제3의 장르인 팝페라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팝(pop)과 오페라(opera)의 합성어인 팝페라는 팝과 오페라라는 두 개의 음악세계를 한 사람의 목소리에 결합시키는 것. 97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맨 처음 사용한 말이다.

아직은 기존의 오페라 곡을 자신의 음역에 맞게 적절히 팝 스타일로 편곡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편곡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팝과 오페라의 중간 형태인 새로운 노래를 작곡해 부르기도 한다.

이탈리아 시에나 태생으로 피렌체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한 후 오페라 무대를 기웃거리던 테너 알렛산드로 사피나(36)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프로듀서 겸 작곡가 로마노 무수마라를 만나 소프트 팝을 가미한 오페라풍의 칸초네를 녹음한 데뷔 앨범 '사피나' 를 내놓았다. 유니버설 레이블이 제작한 이 앨범은 이달 중순 국내에서도 출시될 예정이다.

그리스의 국민 성악가 마리오스 프라굴리스(www.mariosfragoulis.com)도 런던 길드홀 스쿨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파바로티 국제콩쿠르에도 입상한 경력이 있음에도 '레 미제라블' '팬텀 오브 오페라' 등 뮤지컬에 이어 팝페라로 활동무대를 넓혀가고 있는 가수다. 영국의 이지(26.본명 이소벨 쿠퍼)도 길드홀 스쿨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정규 음악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미성(美聲)에 외모를 겸비해 뒤늦게 발탁된 예도 있다. 시각장애인인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나 선반공 출신의 영국 가수 러셀 왓슨(28)이 그런 경우.

이들에게 팝페라는 성악가가 팝스타일의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의 '가벼운 외출' 이 아닌 '본업' 으로 자리잡았다.

팝페라는 신조어이지만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 3~4분짜리 오페라 아리아는 행인들이 휘파람으로 불고 다닐 정도로 칸초네 버금가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었다. 당시 출판업자들은 오페라 아리아를 주제로 한 피아노.바이올린 변주곡 악보를 만들어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처럼 클래식에 내재한 대중성이 지금의 팝페라를 가능케 한 셈이다.

오페라와 뮤지컬.팝무대를 넘나들며 중간층을 공략하고 있는 팝페라 가수들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마이크를 쓰긴 하지만 반주만큼은 주로 피아노.바이올린 등 어쿠스틱 악기로 편성된 오케스트라가 맡고 있다. 전자음향은 아직껏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되고 있는 셈.

하지만 음악계 일부에서는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오페라 전체를 연주할 때도 뮤지컬처럼 마이크와 다양한 음향장치를 사용해야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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