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경영 우수기업들 “회계는 숙제 아닌 투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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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화학회사 OCI 회계팀은 매주 월요일 전국의 회계 담당 직원 25명이 모두 참여하는 콘퍼런스 콜(전화회의)을 연다. 전국 15곳 공장에 파견된 회계 담당 직원이 지난주의 회계 처리를 점검하고 기준을 상의하는 회의다. 매 분기 회계 정보를 결산하면 전국 사업장에서 돌아가며 ‘경영 설명회’를 연다. 사원들과 회사 실적, 자산 규모 등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같은 정보는 투자자와도 공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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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두 차례, 상·하반기를 결산하는 공개 투자설명회(IR)를 연다. 1·3분기가 끝나면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IR을 또 한다.

 ‘2012 투명경영대상’ 우수 기업은 회계 처리를 ‘숙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명한 회계 처리가 기업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OCI가 수상한 대상은 5년 투자의 결실이다. 태양전지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본격 생산하기 시작한 2008년 초 이수영 회장은 “회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한다. 대형 회계법인에서 공인회계사를 영입했다. 직원을 독려해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AICPA)을 취득하도록 했다. 지금은 25명의 회계팀 직원 중 공인회계사가 2명, AICPA가 4명이다. “자격증보다 매주 실시하는 콘퍼런스 콜이 직원의 전문성 강화에 더 도움이 된다”고 문병도 재경 담당 상무는 설명한다. 회계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점을 토론하다 보니 저절로 IFRS(국제회계기준)에 대한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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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프라도 제대로 갖췄다. 2008년부터 미리 IFRS 도입에 대비해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1년에 두 차례 공개 IR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마침 회사가 폴리실리콘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던 터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번 IR을 열면 300~400명의 투자자가 찾아올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이 중 개인투자자가 30% 이상이다. 기존 금융회사 대상의 소규모 IR에 참석하지 못하던 이들에게까지 정보를 개방한 것이다.

 OCI는 모든 직원에게 회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8년부터 과장급 이상 전 간부가 연세대 MBA와 손잡고 만든 6개월짜리 재무·회계 교육을 받고 있다.

 회계 투명성에 대한 투자는 최우수상을 수상한 KB금융지주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투명경영대상을 수상한 이 회사는 2007년 금융권 최초로 IFRS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룹 내 회계 전문 인력만 167명. 지난해 이후 공인회계사와 AICPA를 14명 새로 뽑았다.

 우수상을 수상한 녹십자는 2007년부터 ERP(전사적 자원관리)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24억원을 썼다. 2009년 이후에만 8명의 회계 전담 인력을 채용하는 등 지속적인 투자를 해 오고 있다. 그동안 한 차례도 정정 공시를 한 적이 없다는 점과 1972년 이후 40년 연속 흑자를 낸 내실 경영도 높이 평가됐다.

역시 우수상을 받은 현대자동차는 글로벌 COA(Chart Of Accounts·계정 과목 일람표)를 제정해 전 세계 사업장이 통합된 회계 처리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많은 기업이 회계 투명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회계 수준은 아직 후진적이라는 것이 한국회계학회의 지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최근 발표한 ‘2012년 국가경쟁력 지수’에서 한국은 59개국 중 22위로 평가됐다. 하지만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가리키는 ‘회계와 감사’ 부문의 경쟁력은 59개국 중 41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47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나아졌지만 여전히 국가 위상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다.

 권수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투명경영대상을 받은 KB금융지주의 경우 자금조달 등에서 상당한 이익을 봤다며 만족하고 있다”며 “회계 투명성 제고는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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