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의 자존심 미르호 마침내 폐기

중앙일보

입력

옛 소련의 국력의 상징이자 러시아 우주 개발사의 영광이었던 우주정거장 미르호가 15년의 활동을 마무리하기 위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러시아 정부는 `평화''와 `세계''라는 뜻을 함께 지닌 미르호를 오는 12일 남태평양에 추락시켜 폐기할 예정이다.

3차례 미르호에 파견돼 747일이라는 세계 최장의 우주 체류 기록을 세운 우주비행사 출신 우주 엔지니어 세르게이 아브데예프는 "미르호가 앞으로 3년, 최고 10년더 우주에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수년동안 부족한 재원으로 미르호를 유지하면서 국제우주정거장(ISS)에도 우주 개발자금을 투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으나 이 우주정거장의 표면부식상태 악화와 예산난 심화에 따라 이를 폐기하기로 결정했었다.

미르호의 폐기는 지난 1957년과 1961년 사이 사상 최초의 우주선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고 최초의 우주견(宇宙犬) 라이카와 최초의 우주인 유리 A. 가가린을 탄생시킨 옛 소련의 우주 개발 전성기와 크게 대조적인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월 하강을 개시한 무게 143t의 미르호는 지구 상공 250㎞까지 내려온 후미르호와 도킹한 화물우주선에 의해 엔진이 꺼져 마지막 하강에 들어가, 지구 궤도재진입 시 최고 27t의 파편들이 지구 위로 떨어진다.

러시아 우주 당국은 미르호의 파편이 남태평양의 호주-칠레 중간쯤에 직접 떨어지도록 하겠다고 다짐해 오고 있으나 미르호가 그동안 안전에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켜온 점으로 미뤄 지상 관제탑이 이를 정확하게 유도할 수 있을 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르호의 핵심 모듈은 1986년 2월 20일 발사됐고 그 후 지금까지 5개 부분 추가로 성능이 향상돼 전에 발사된 우주정거장보다 훨씬 긴 기간을 활동함으로써 우주정거장 수명 연장의 표본이 되었다.

이 우주정거장은 미국의 우주왕복선 발사와 함께 영웅적인 우주 탐사보다는 우주선이 일상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을 뿐만 아니라 16개국의 ISS 건설의길을 열어주었다.

미르호는 러시아 국내외의 많은 우주비행사들이 다녀갔고 1989년 9월부터 1999년 8월까지는 우주비행사들이 상주하면서 희귀 물질 생산에서 장기 우주비행에서중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려는 연구에 이르기까지 2만3천여 건의 과학적실험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르호는 여기 저기서 잔 고장이 발생해, 1989년부터 1999년까지 미르호에 체류했던 아브데예프는 공기 누출 지점을 찾아내고 정수(淨水)시스템 등 우주인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고장을 고치느라고 애를 먹었다고 시인했다.

미르호의 핵심 모듈은 애초 3~5년 동안만 활동하도록 할 예정이었으나 1991년옛 소련 붕괴 직전 그 후속 우주정거장 개발을 위한 정부 예산이 동결되는 바람에미국의 지원을 받아 지금까지 수명이 유지돼 왔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러시아의장기 우주비행 경험을 빌리기 위해 미르호를 임대해 1995년에서 1998년 사이 7명의우주인을 보냈다.

그러나 미르호는 마모가 심해 1997년에는 한 화물우주선과 충돌할 뻔한 사고를일으켰고 컴퓨터 고장까지 일어나 NASA는 마지막 미국 우주인 철수 후 이 우주정거장을 폐기하도록 권유하고 ISS 개발에 주력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만약 ISS가 건설되면 러시아는 지위가 약한 협력자가 돼 자국의 우주개발계획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미르호를 활성화해우주 연구에서 우위를 유지한다는 방침에 따라 각종 실험을 계속했었다.

러시아는 그러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 결국 우주정거장의 마모와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1999년 추가재원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2000년에 폐기하기로 일단 결정했다가 작년 11월에야 금년 3월 미르호를 `안락사''시키기로 최종적인 결정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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