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리뷰] '벼랑에서 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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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진지하게 내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젠 왜 결혼하지 않았냐고 물을 때도 됐는데...그들이 물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조금씩 다른데, 다 진실인 것 같다. 제 삶을 확장하고 싶지 않아서요,자신이 없어서요, 결혼해 살 수 있는 체질이 아니에요,하는 나의 대답에는 거짓이 없다."

시인 조은(41)씨는 서울 사직동 언덕배기 동네에서 혼자서 산다. 다 떨어져가는 15평 짜리 한옥에서 산다.지붕이 낮아서 그런가.그녀의 집에 들어서면 동료 문인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보면 어느새 편안하게 잠에 빠져든다. 서울 도심의 그동네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지붕을 나란히 하고 갖은 사연의 삶들을 키우고 있다.

"잠에서 깼을 때,나는 일부러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도 한다. 그러면 더 실감난다. 이웃들이 바로 내 옆에 몸을 뉘고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골목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아는 사람의 검허한 기도 소리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면 그 시간엔 어디선가 곤한 숨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조씨의 산문집 『벼랑에서 살다』에서는 이웃들의 곤한 숨소리가 들린다. 묻지 않았는데도 이웃들은 조씨만 보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털어놓곤 한다. 그래 혼자 살면서도 누구보다도 융숭한, 파란만장한 삶의 드라마를 알고 있다.

"바위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물까지 짜내는 심정으로 썼다"는 이 순도 높은 산문을 통해 그 삶의 드라마들은 아연 밤하늘의 별보다도 더욱 그윽하게 빛난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읽고나면 하늘하늘 날아가버려 남는 것은 하나도 없는 언어들이 곧잘 산문집이란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혹은 현실과 너무 밀착돼 반성적 공간 하나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질구질한 신변잡기식 글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독신이기에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길어올린 조씨의 산문은 그래 더욱 빛나며 읽을 맛을 던져준다.
(조은 지음, 마음산책, 7천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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