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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블루스, '돌아온 神' 에릭 클랩튼

중앙일보

입력

그의 연주에 감동해 기타를 손에 잡은 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도저히 그의 연주를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에 울며 기타를 버린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올해 쉰여섯 살. 지칠 줄 모르는 왕성한 창작과 연주로 30여년 동안 세계 대중음악의 최전선을 지켜온 '기타의 신(神) ' 에릭 클랩튼이 1998년 '필그림' 이후 3년 만에 솔로 앨범 '렙타일' 을 발표했다.

지난해 그가 최고의 뮤지션으로 추앙하는 '블루스의 왕' 비비 킹과 협연한 앨범 '라이딩 위드 더 킹' 에서 블루스의 정수를 보여줬던 에릭 클랩튼은 새 앨범에서도 진한 블루스를 선보였다.

그는 끊임없이 음악적 실험을 거듭해왔지만 언제나 그 실험의 밑바탕에는 블루스가 깔려 있었고, 새로운 실험을 하다가도 결국은 블루스로 돌아왔다.

'라이딩…' 에서 올해 일흔여섯 살의 노장 비비 킹과 함께 블루스 명곡들을 들려줬던 그는 이 앨범에서도 블루스 뮤지션들의 곡들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거장 스티비 원더의 히트곡 '에인트 고나 스탠드 포 잇' 이 대표적인 곡이다. 지난 80년 큰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를 에릭 클랩튼의 연주로 다시 들으며 아련한 옛 기억을 더듬을 팬들이 많을 것 같다.

70년대 아이즐리 브라더스의 히트곡 '돈트 렛 미 비 론리' 도 다시 연주했으며, 스티비 원더와 같은 시각장애인 가수였던 레이 찰스의 50년대 노래 '컴 백 베이비' 도 그의 새로운 편곡과 연주로 다시 살아났다. 기타리스트 제이 제이 케일의 '트래블린 라이트' , 빅 조 터너의 '갓 유 온 마이 마인드' 도 들려준다.

이처럼 지난 수십년간 발표됐던 블루스 곡 가운데 명곡들을 가려 다시 연주했지만 단순히 복고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명곡들의 해석과 연주가 "과연 에릭 클랩튼!" 이라는 감탄이 자연스레 나올 정도로 새롭고 맛깔진데다 앨범에 수록된 노래의 반 정도는 공을 들인 창작곡이기 때문이다.

창작곡들은 블루스에 기반하면서도 재즈와 라틴 리듬을 접목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노래들이다.

첫 곡 '렙타일' 은 보사노바 리듬이 흥겨운 연주곡. 그가 만든 '빌리브 인 라이프' '모던 걸' 에서도 화려한 기교를 부리지는 않지만 안정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그의 기타 연주 실력을 즐길 수 있다.

역시 그가 곡을 쓴 '파인드 마이 셀프' 에는 흑인 남성 보컬 그룹 임프레션스가 백 보컬로 참가해 멋진 화음을 들려준다. 파행(爬行) 동물 혹은 비열한 사람을 뜻하는 영어 단어 렙타일(Reptile) 은 그의 고향에선 상대방을 부를 때 흔히 쓰는 단어라고 한다.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50년대 이후 블루스의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개인적으로 그동안의 음악 생활을 되돌아보는 듯 하다.

범 표지에는 꼬옥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미소년이 씨익 미소짓고 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실려있다. 에릭 클랩튼의 일곱살 때 모습이다.

어쩌면 그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고향을 생각하며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되짚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들 인생에 굴곡이 없겠는가만 에릭 클랩튼의 생은 참 파란만장했다. 약물.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그의 빅 히트곡 가운데는 그런 개인사가 투영된 노래가 많다.

친구이자 동료 뮤지션인 조지 해리슨의 아내였던 패티 보이드를 사랑해 결국 그녀와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만든 노래가 '라일라' 다.

애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많은 이들을 울렸던 노래 '티어즈 인 헤븐' 은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그가 그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슬픈 부정(父情) 으로 만든 이 노래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한층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것은 노래에 담긴 더할 수 없는 진솔함 때문일 것이다.

이번 앨범에는 지난해 세상을 떠난 그의 삼촌에게 바친 노래 '선 앤드 실비아' 가 들어 있다. 이제 그 자신이 생을 돌아볼 나이에 이른 입장에서 친한 가족의 죽음은 음악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듯 하다.

■ 기사에 관한 뒷얘기는 기자포럼 '스타?수다!'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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