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스트레스 컸나 … 실리콘 밸리 ‘투병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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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미국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이 난치병에 시달린다는 외신 보도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 래리 페이지(39) 구글 창업자 겸 CEO의 건강 문제를 거론했다. 발단은 지난 22일(현지시간) 페이지가 직원들에게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 심각한 문제는 없다”는 e-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메일을 보낸 이유는 페이지가 최근 주주총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 ‘심각하지 않다’는 페이지의 말을 의심 어린 눈초리로 보고 있다. 39세에 불과한 그의 머리카락이 나이보다 빠르게 백발로 변했음을 근거로 “중증의 갑상샘 암에 걸렸을 것”이란 의문을 제기한다.

 구글 주가도 약세다. 정보기술(IT)의 특성상 창업가 또는 CEO의 비중이 워낙 커 건강 이상설이 바로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 때문에 56세로 사망한 직후여서 해당기업의 주가가 창업자와 CEO들의 건강 악화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뒤 2009년 간이식 수술까지 받는 등 개인적으로는 긴 투병생활을 해왔지만 철저히 이를 비밀에 부쳐 온 것 역시 다른 IT업체 CEO의 건강에 대한 의혹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구글의 또 다른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39)도 건강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는 한동안 자신의 블로그에 ‘LRRK2’라는 이름으로 글을 썼다. LRRK2는 파킨슨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G2019S)가 발견된 유전자의 이름이다. 세르게이 브린은 과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20~80% 높다”고 한 바 있다.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인 그의 어머니도 같은 변형 유전자를 갖고 있고, 모친 역시 파킨슨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르게이 브린은 그의 아내인 앤 워지츠키가 운영하는 유전병 연구업체인 ‘23andme’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파킨슨병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에 이상이 생기는 질병으로, 팔다리를 떨고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이 병을 앓고 있다.

 앤디 그로브(76) 인텔 창업자 또한 파킨슨병과 싸우는 중이다. 그로브는 2005년부터 파킨슨병 연구에 3000만 달러(약 350억원)를 기부했다. 그는 “1968년 반도체 칩에 내장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는 1000개였으나 지금은 26억 개나 집어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지만 파킨슨병 치료 방법은 여전히 196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업계는 IT 거물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이유가 지나친 실적 스트레스와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편집증(paranoid)에 가까운 완벽에 대한 추구와 지나친 자존감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자신의 치료법을 자신이 택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잡스와 그로브가 그랬고, 세르게이 브린 역시 부인이 세운 회사를 통해 파킨슨병의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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