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에 잡힌 팬, 록시·돈키호테가 빼앗아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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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시카고’. 벨마를 연기하는 최정원(가운데)은 안정된 연기력으로 무대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사진 신시컴퍼니]

6월 말, 국내 뮤지컬계는 숨가쁘다. 본격적인 여름 시즌을 맞아 이름값 하는 뮤지컬들이 하나 둘씩 올라가고 있다. 올 여름도 예외 없이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들은 몽땅 뮤지컬들로 채워지고 있다. 과연 이 치열한 여름 시장에서 살아남는 자는 누가 될까. 관객을 향한 본격 구애가 시작됐다. <표 참조>

 ◆‘했던 작품’ 전성시대=신작이 별로 없다. 대부분 이미 했던 뮤지컬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독특한 특징인, ‘인기 뮤지컬의 레퍼토리화’는 이번 여름 시즌에도 뚜렷한 흐름이다. 흥행이 됐고, 검증도 어느 정도 끝난 작품을 안정적으로 올리려는 제작사의 의지가 투영됐다.

 그래도 약간의 변화는 필수 항목. ‘시카고’에선 옥주현이 주로 했던 록시 역에 아이비가 캐스팅됐다.

아이비는 뮤지컬 두 번째 출연작이라 보기 힘들 만큼, 천연덕스럽게 무대를 휘젓는다. 관록의 남경주·최정원·성기윤과 시너지 효과를 빚으며 ‘시카고’는 현재 순항 중이다.

 ‘맨 오브 라만차’는 주인공 남자 배우가 싹 바뀌었다. 과거 류정한·정성화·조승우가 했던 돈키호테 역을 이번엔 황정민·서범석·홍광호가 연기한다. 다들 칼끝이 제법 매서운 배우들이다.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싶다.

 ‘헤어 스프레이’는 여장 남자가 해왔던 에드나 역을 배우 공형진, 성우 안지환씨가 연기해 눈길을 끈다. ‘모차르트!’와 ‘잭더리퍼’엔 각각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장현승과 FT아일랜드의 송승현이 캐스팅됐다. ‘잭더리퍼’는 여름 시즌 이후 일본 공연이 예정돼 있다.

 ◆‘위키드’의 독주=그래도 현재까지 절대 강자는 ‘위키드’다.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를 비틀었다. “‘오즈의 마법사’가 국내에 아주 친숙한 동화가 아니다. 그걸 패러디 했으니 ‘위키드’를 관객들이 낯설어 하지 않겠는가”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위키드’는 유료 객석 점유율 90%를 넘기며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단단한 구성력, 압도적인 무대 규모, 외국 배우들의 빼어난 가창력이 더해지며 ‘위키드’는 자체 브랜드화에 성공했다는 분석이다.

뮤지컬 ‘라카지’의 앨빈 역 김다현.

 ◆‘라카지’ 금기를 깰까=대형 신작은 달랑 두 편이다. 브로드웨이 화제작 ‘라카지’가 눈에 띈다. 세 번이나 토니상을 받았다. 남남 게이 커플에게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이 보수적인 집안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배꼽 잡게 웃기면서도 코끝 찡한 반전도 있다. 다만 꽃미남 게이에게 관대한 한국 관객이, 본격적인 동성애자 얘기엔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편안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번지 점프를 하다’는 이병헌·고(故) 이은주 주연으로 유명한,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화했다. 2008년부터 준비를 해 왔으니 적지 않은 시간, 공을 들여왔다. 원작의 애절함을 어떤 무대로 빚어낼지 주목된다. 올 여름 유일한,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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