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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공간1번지] 금강변 갈대밭

중앙일보

입력

세상사람들에게는 긴가민가한 아슴츠레한 기억들이 있다고 한다.꿈에서 보았는지 아니면 전생(前生) 에서나 보았을 듯한 환상(幻想) 같은 신비한 영상.알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아주 어릴 때,간신히 혼자서 걷게 되었을 즈음의 기억이라고 한다.

내게도 그런 영상 같은 것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서 불빛들이 고물고물 기어가는…,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내가 그 불빛 아래로 찰박찰박 걸어간다.멀리서 물소리는 음악처럼 철썩이는데.

분명코 너무도 아름다운 영상이긴 하지만,그 영상이 전생의 것이 아닌가 하고 신비스런 생각에 잠겨 본 적은 없다.내가 처음으로 고향을 떠날 때까지 해마다 계속되던,너무도 확실한 현세의 일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비단처럼 아름다운 금강(錦江) 이 바다로 흘러드는 어구에 있었다.하루 두 번씩 바닷물이 강으로 밀고 올라오는 곳.드넓은 갯벌이 끝없이 펼쳐지고 그 곁에는 갈대밭이 끝도 모르게 이어지는 곳.

갯벌에는 조그만 게들이 무척이나 많았고,갈대밭엔 숱한 새들이 보금자리를 이루고 있던 곳.게는 다리 두개가 집게 모양이고 빨갰다.우리는 그걸 갈밭에 산다고 갈게라고도 하고 사람이 가까이 가면 도둑처럼 구멍 속으로 재빨리 도망을 친다고 도둑게라고도 불렀다.

이 도둑게는 도망치는 게 너무 빨라서 잡기가 무척 어려웠다.그런데 오월 단오절 무렵이면 이 도둑게들이 갈대 잎에 매달려 그네를 탄다.남이 쳐다볼까 부끄러워서인지 해가 지고 초승달이 은은히 비치는 달밤에 그네를 탄다.

한 마리가 먼저 갈대 잎에 매달리면 또 다른 놈이 올라와서 그놈의 다리를 잡고 또 한 마리가 매달리고,그 다리에 또 한 놈이 붙고,거기에 또 매달리고,또 매달리고 하여 길게 엮은 것처럼….

그것은 태고적부터 계속된 게들만의 축제 잔치마당이었으리라.

그렇게 연면히 내려온 게들만의 잔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축제로 변해갔다.

단오 때가 되면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인 사람들이 횃불을 붙여 갈밭으로,갈밭으로 몰려간다. 한 손엔 횃불 들고 한 손엔 양동이 들고.그리곤 훑어 내린다.

아니 양동이를 훑어 올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그네를 즐기던 게들은 눈사태 내리듯 쏟아지는 게사태 속에서 열 개나 되는 팔다리을 필사적으로 휘젓지만 기어이 간장을 뒤집어쓰곤 밥상에 오르고 만다.

이러한 게들의 슬픔을 모르는 철부지 꼬마,나에게는 그 달밤의 횃불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게잡이는 수 백년 이상 계속되었을 것이다.그래도 게들은 그렇게 넉넉히 살아남아 그 긴 세월의 마지막 자락을 잡은 꼬마 김태정에게도 추억을 남겨 주었다.

앞에 내 고향이 금강 어구에 ‘있었다’고 과거의 표현을 쓴 것은 이제는 그런 게잡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이제는 나의 고향에서는 도둑게를 볼 수가 없다.

이제 1년만 지나면 환갑을 맞는 내 평생.그 평생에 잘한 일이 한 가지는 있다고 자부한다.그것은 야생화(野生花) 란 말을 보급시킨 것이다.우리 고향의 갈대밭은 누가 키운 게 아니라 저절로 자란 소위 일종의 잡초(雜草) 다.

꽃(이삭) 이 피기 전엔 베어다 소먹이로 쓰고,꽃이 핀 다음엔 베어다 빗자루를 만들고,줄기는 잘라서 갈대발을 만들거나 황토 벽에 엮는다.

아이들은 갈대밭에서 갈대를 꺾으며 놀다간 배가 고프면 갯벌을 판다.그러면 드러나는 하얀 뿌리.갈대의 고통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그 비대한 생뿌리를 뚝 잘라서 허기를 채우는 아이들.

그래도 여전히 그 자리에 다시 나오는 갈대.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사람들이 오염시킨 강(江) 을 그 놀라운 정화력으로 강물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갈대.그 갈대를 언제 우리가 애지중지 길렀던가? 갈대는 보살피는 이 없어도,그렇게 수난을 당해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던 풀이다.우리는 그런 풀들을 잡초(雜草) 라 부른다.

하지만 갈대는 분명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잡초 모두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내 고향 금강변의 잡초들은 이렇게 풍요로움을 선사했다.그 갈대밭은 훼손이 되어가도,내 몸은 고향을 떠나 낙원동의 저자거리를 맴돌고 있어도,내 영상 속의 갈대밭은 언제나 어린 시절 그대로다.

너무도 뚜렷한 그 영상은 내 인생을 잡초를 따라 다니는 인생으로 만들었다.그 인생은 내 생활은 버겁게 했지만 언제나 사랑을 느끼는 삶을 선물했다.그리고 한때는 내 생명을 구하기도 했었고….

운명처럼 들판의 잡초를 찾아다니며 나는 잡초와 점점 친해져 갔다.그리고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았다.내가 엿본 식물,사람들이 말하는 잡초들의 사생활을 책(21세기 본초강목) 으로 써내기도 했다.

겨울에 피는 동백꽃의 꽃가루는 벌 나비도 없는데 누가 옮겨줄까? 새가 옮겨준다.동백꽃은 꿀도 많아 대추알만큼이나 큰 꿀덩이를 씨방에 숨기고 있으며,이 꿀을 따면서 꽃가루를 옮겨주는 새가 바로 동박새다.

‘동백 아가씨’의 작사자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꽃잎은 하얗게 멍이 들었다”고 애매하게 표현하지 않았을 게다.그랬으면 이미자씨의 노래뿐 아니라 그 가사도 국문학사에 기록되는 아름다운 시(詩) 가 되었을 텐데.어쨌든 이런 꽃은 새 조(鳥) 자 조매화(鳥媒花) 라 한다.

충매화(蟲媒花) 는 벌이나 나비등 곤충류가 꽃가루를 옮겨주는 것을 말하며 가장 많이 있다.소나무나 버드나무,은행나무 등은 바람이 꽃가루를 옮겨 풍매화(風媒花) 라 하며 큰 나무들이 여기에 많이 속한다.

물여뀌, 가래 같이 물속에서 자라는 수생식물(水生植物) 들은 여름 장마철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물이 꽃이삭까지 차오르면 꽃가루를 물위에 떨어뜨려 다른 꽃이 꽃가루가 닿아 교접을 이루기 때문에 수매화(水媒花) 라 한다.

가장 안된 건 사과나 배, 딸기 같은 것들인데 이들은 꽃이 피어도 농약을 쓰기 때문에 벌나비가 구애를 할 엄두를 못낸다. 자연의 매파가 없으니 사람이 일일이 꽃가루받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팔자에 없는 인매화(人媒花) 가 되었다. 때문에 농약치던 농부님네는 벌나비와 동업자가 되고….

길가의 토종 하얀 민들레는 동정녀다. 평생 수절을 하다가 처녀 임신을 해서 종족보존을 한다.그러나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는 일년에 몇 차례씩 임신과 출산을 한다.물론 정조 관념은 없다.이러다보니 서양민들레가 민들레 나라를 점령하다시피 되었다.

온갖 화학물질이 판치는 이 세상.잠시 짬을 내서 우리 마음 속의 고향을 생각해보자.잡초 우거진 그 들녘엔 메뚜기가 주먹을 쥐면 잡힐 정도로 이리 저리 뛰고,물 속엔 살찐 미꾸리가 가득 차고,밤이 되면 반딧불이 불 밝히던 우리의 옛 고향을.

그들 생명의 근원은 잡초(雜草) 였다.

돌보는 이 없어도 건강하게 자라 때가 되면 스스로 건강한 거름이 되던 그 잡초.내 이제 그 이름을 야생화라 부르고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라는 풀이다.

이제 남녘의 들녘에는 파란 보리밭 사이로 이들 야생화들 개불알풀,말냉이,별꽃,광대나물,할미꽃,민들레,제비꽃 등이 양지바른 언덕에서 가녀린 꽃을 피우고 나를 부른다.들녘에서….

김태정 金泰正)약력

▶1942년 충남 부여 출생.
▶독학(獨學) .미국 LA 유니언대학 명예 이학박사.(1984년)
▶한국야생화 연구소 소장.한국식물분류학회 회원.
▶민통선 북방지역 자연생태 종합학술조사,서해 외연열도 자연실태 종합학술조사,영광 안마군도 자연생태 종합학술조사 등 활동.
▶저서:‘한국야생화도감’‘약용식물’‘고산식물’‘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전3권) ‘어린이식물도감’‘쉽게 찾는 우리꽃’‘한국의 자원식물’(전5권) ‘한국의 야생화’(전12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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