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도, 초등학생도 고전 펼쳐드는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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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 정용선 박사(오른쪽 둘째)의 아파트에서 디자이너 마영범씨(오른쪽)와 지인들이 장자 수업을 받고 있다. [이정봉 기자]

디자이너 마영범(55)씨는 한 달에 두 번씩 지인들과 ‘장자’(莊子) 과외 수업을 받고 있다. 마씨는 2009년 한국스타일박람회 예술감독, 2010년 ‘통영12공방 프로젝트’ 예술감독을 맡은 소위 ‘잘나가는’ 디자이너다. 마씨와 함께 수업을 받는 멤버도 가천대 이정욱(56·실내건축학) 교수,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성현(53)씨, 레스토랑 컨설턴트 최규호(49)씨 등 디자인 부문 전문가들이다.

과외 선생님은 대학에서 동양 고전을 강의하는 정용선(50·여) 박사. 이들은 정 박사의 자택인 경기도 과천 아파트에서 지난 2월 이후 다섯 달째 강의를 받고 있다. 마씨는 지인들과 함께 이곳에서 4시간씩 한자로 된 ‘장자집석(莊子集釋)’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한다. 디자이너와 장자. 아무리 봐도 부조화스럽기만한 이 조합,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마씨는 “좋은 디자인을 하려면 껍데기를 잘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장자의 가르침은 이런 나의 생각에 딱 들어맞는 영감을 제공한다”고 했다. 이어 “장자를 공부하면 할수록 ‘트렌드’를 넘어 디자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된다”고 덧붙였다. 정 박사는 “동양 고전은 지하수처럼 생명을 키우는 자양분”이라 고 평가했다.

 논어·맹자·장자 등 동양의 지혜를 담은 고전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은 최근 들어 30% 가까이 수강생이 늘었다. 연수원 관계자는 “2009년 300명 정도였던 수강생이 2010년부터 매년 늘더니 올해는 500명을 넘었다”며 “우리가 출판한 『논어』 역시 지난해에 비해 30% 넘게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 고전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도 늘고 있다. 현재 서울 성원초, 서산 서령초, 여주 매류초 등 전국 10여 개 초등학교가 고전 읽기 교육을 필수로 지정했다. 지난해 9월 『초등 고전 읽기 혁명』을 출판한 서울 동산초 송재환 교사는 “고전은 어려운 게 아니다. 초등학생도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기만 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신정근(동양철학) 교수는 “동양 고전이 좋은 점은 각박한 현대인에게 삶과 일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기원전 3~4세기 고대철학인 ‘도가’의 사상가. 자연법칙에 따라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본다. 책 중에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른다’는 내용으로 인식의 상대성을 다룬 ‘호접지몽(胡蝶之夢)’ 일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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