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에세이] 지창진 창신소프트 대표

중앙일보

입력

많은 IT 업체가 일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무릇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한 법인데, 우리 기업들의 일본 시장 공략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사업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들로 나는 주저없이 사람.커뮤니케이션.정보.문화를 꼽는다. 오랫동안 일본과 관련된 사업을 해 온 경험에 비춰 일본에서 역시 이들 요소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에 가장 부족한 것 또한 이 네가지 요소다.

우선 사람을 보면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인들 중 현지 인맥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욕을 밑천 삼아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보지만 태생적으로 의심 많은 일본 기업들은 낯선 한국인들에게 문을 쉽사리 열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은 어떤가. 많은 사람이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 통역 학생 한 명만 달랑 데리고 중요한 미팅에 들어간다. 이 경우 십중팔구 중요한 뉘앙스를 놓친다. 일본어를 꽤 잘하는 사람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다.

정보의 중요성 또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에 오기 직전에야 책 몇 권 읽고 일본인 몇 명 만나 조언을 얻는 정도로는 일본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존 시장의 후발 주자로 간신히 끼어들 수만 있어도 축하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문화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모험을 싫어한다. 우리는 흔히 ''우선 해 놓고 보자'' 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계획을 다 세운 뒤에 시작한다.

한국 기업인들이 잘 안되는 일본어로 목이 터져라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일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이해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기쁜 나머지 웃으며 의자에 앉는 순간, 질문과 비판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뭘로 돈을 벌죠?" "내년쯤이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습니까?" "일본의 랜은 그렇게 빠르지 않아요. 언젠가 빨라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사업을 구상했다면 안전하지 못해요" 등등.

우리는 흔히 "우리가 인터넷 분야에서 일본보다 2년 정도 앞서 있다" 고 주장하지만 "2년 격차의 근거를 모르겠다" 는 게 일본인들의 솔직한 생각이다. 물론 특정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력이 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몇몇 일본 기업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이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본과의 문화적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직접 마케팅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일 양국간의 이런 현실적 괴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중간자 역할을 할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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