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명 참가한 영어페스티벌 “영어 울렁증 날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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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4시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신동중 강당. ‘신동 영어페스티벌’ 마지막 날 행사가 한창이었다. 이날 행사에선 영어 연극과 뮤지컬 공연, UCC 상영이 이어졌다. 강당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학생·학부모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서로 경쟁하는 ‘대회’가 아닌 모두가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

글=전민희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영어 연극 ‘신데렐라’에서 왕자 역할을 맡은 태영준(오른쪽)군이 이복언니 역의 박준영(가운데)군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기자가 강당에 들어가자 3학년 3반 학생 7명이 준비한 연극 ‘신데렐라’가 막 시작됐다. “Once upon a time(옛날 옛날에) ….” 황세원(3학년)양의 내레이션이 끝날 무렵 무대가 분주해졌다. “Cinderella! Cinderella! Wash all of these dirty clothes!(신데렐라, 신데렐라, 이 더러운 옷 좀 다 빨아라).” 이복언니 역할을 맡은 박준영(3학년)군이 긴 머리 가발을 뒤집어 쓴 채 무대에 등장했다. “Don’t forget to wash the dishes(설거지 하는 것도 잊지마).” 아줌마 파마 가발을 쓴 이주희(3학년)군은 빗자루를 던지며 신데렐라를 괴롭히는 계모 역을 실감나게 소화했다. 주인공 신데렐라 역을 맡은 이현지(3학년)양은 타박을 견디다 못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학생들의 어설프고 과장된 연기에 객석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극은 원작의 내용과는 다르게 전개됐다. 왕자는 신데렐라가 아닌 이복언니와 결혼하면서 끝을 맺었다. 연극이 끝나자 관객들이 “결말이 참신했다”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연극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박수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들겼다.

12일부터 14일까지 방과후 시간에 열린 신동 영어페스티벌에서는 ‘신데렐라’ 이외에도 ‘흥부와 놀부’ ‘어밴저스’ ‘디스 이스 라이프’ 등의 연극과 ‘쿵푸팬더’ ‘뮤직트러블’ 등의 뮤지컬 공연은 물론, UCC 상영과 팝송 부르기, 시 낭송, 토론 등이 영어로 진행됐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이 축제는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준비한다. 올해는 108팀 267명이 참가했다.

 10분 남짓한 연극 공연을 위해 참가 학생들은 한 달 넘게 연습에 매달렸다. 신데렐라에서 요정 역할을 맡은 한정현(3학년)양은 “작품 선정부터 대본 작성, 역할 분담, 대사 외우기, 음악·의상준비 등 필요한 게 많았다”며 “평일에는 대부분 학생이 학원을 가야 했기 때문에 보통 주말을 활용해 연습에 매진했다”고 회상했다. 팀원 구성은 물론, 준비 과정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7명이 한 조가 돼 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작품선택이나 역할분담을 할 때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 달 2일부터 시작되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열리는 행사인지라 축제 자체를 반대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공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동 영어페스티벌은 이제 단순한 ‘교내 공연’을 넘어 영어에 흥미를 느끼고 자신감을 키우는 ‘기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정현양은 1학년 때부터 이 행사에 줄곧 참여했다. 1·2학년 때는 영어뮤지컬 공연을 했고, 올해는 연극에 참여했다. 영어교사를 꿈꾸는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학연수를 위해 3개월 동안 미국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지역 학생 상당수가 해외거주경험이 있다 보니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그러던 한양이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말, 교내 영어 뮤지컬 공연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대사를 외우고, 관객 앞에서 큰 소리로 영어를 말하는 것 자체가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됐어요. 그 전까지는 영어 울렁증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영어에 대한 공포감이 사라졌죠.” 한양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구어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사를 제대로 외워두면 평소 원어민 교사와의 의사소통 과정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처음 이 행사에 참여한 박준영(3학년)군은 영어페스티벌에 대해 ‘영어 잘하는 아이들만의 행사’라는 선입견을 가졌었다. 하지만 중3이 된 뒤 ‘목표를 이루며 성취감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준비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대사를 외우고 표현한 그는 이날 무대의 막이 내려지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보다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자리였습니다. 지금까지 괜한 두려움에 페스티벌 참가를 꺼렸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신동 영어페스티벌은 학생들이 영어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생활영어를 익히게 하기 위한 ‘학습의 장’이었다. 교사들은 이 행사를 통해 영어와 관련한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발견한다. 이경희 연구부장은 “수업시간에 자주 졸던 아이도 페스티벌에서 팝송을 부를 때는 눈에서 빛이 나더라”며 “그 뒤로는 ‘팝송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면서 영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유도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신동중에서는 학생들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점심시간에는 원어민 교사와 학부모들이 진행하는 영어프로그램 ‘잉글리시 홀릭(English-holic)’이 진행되며, 매년 11월엔 영어 골든벨 대회 ‘챔피언 오프 챔피언스(Champion of Champions)’가 개최된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컬처데이(Culture Day)’에서는 할로윈데이, 밸런타인데이 등의 유래와 특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영어수준을 5단계로 나눈 수준별 어휘집을 자체 제작했다. 어휘집에는 중1부터 고2 수준까지의 영단어가 들어있다. 학생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어휘집을 골라 암기한다. 올해 1단계 수준의 어휘집을 외웠다면 내년엔 2단계 어휘집을 공부하는 식이다. 고교 수준의 영·단어까지 포함돼 해외거주경험이 있는 학생들에게도 유용한 학습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마희창 교감은 “영어의 기초인 어휘 훈련을 통해 영어 실력을 키우고 성취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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