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밤 고급라이브 '수요예술…' 트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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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대중음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잖아요. 10대 위주의 쇼프로그램 일색인 상황에서 어떤 의무감을 느끼죠. 제대로 된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갈수록 커집니다."(이현우)

한국에서 9년째 계속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장수 프로그램'이라고 불러도 될까. 1992년 10월 첫 방영을 시작한 MBC '수요예술무대'가 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조용하지만 확고한 지지를 받으며 갈수록 완숙미를 뽐내고 있다.

이번 주 방영분이 3백60회다. 초창기엔 재즈 연주를 주요 메뉴로 했지만 6년전에 클래식·팝·가요에도 문호를 연 이후로 크로스오버적인 독특한 음악 프로그램이 됐다.

매주 수요일 밤 12시30분,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잠든 뒤 불을 끈 조용한 거실에서 '수요예술무대'를 보는 재미로 한 주의 허리를 무난히 넘긴다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많은 사람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칭찬해도 무방하리라.

'수요예술무대'를 만드는 세 남자, 한봉근(43)PD와 진행자인 피아니스트 김광민(41),가수 이현우(35)는 '형 아우' 하는 친한 사이다. 흔히 PD와 진행자 사이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 관계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의 최대 매력은 세계 수준의 유명 아티스트들의 라이브 공연을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허비 행콕·칙 코리아·윈튼 마셜리스·케니 지·브라이언 맥라잇 등 내로라 하는 뮤지션들의 공연을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외국에도 그리 많지 않다. 이제 한국을 찾는 유명 뮤지션이라면 거의 전부 '수요예술무대'에서 공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유명 아티스트들과 즉흥 공연을 펼칠 만큼 실력있는 뮤지션인 김광민·이현우의 탁월한 음악 실력도 이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는 요인이다.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진행을 맡은 김광민은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한 국내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 3년전부터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가수 이현우는 4년전 공동 진행자로 합류했다. 이현우가 합류한 이후 팝·록 뮤지션들도 출연하는 등 프로그램의 폭이 넓어졌다. 9년째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한PD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시청률을 최고로 치는 한국의 방송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수요예술무대'가 대표적인 좋은 프로그램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장수하고 있는 것은 질 위주의 프로그램 제작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고집 덕분이다.

"수준있는 뮤지션들만을 골라 무대에 세우는 데는 일절 타협의 여지가 없지요. 수요예술무대가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더 이상 바랄 건 없습니다."

국내 가수들에게 좀 더 많은 출연 기회를 주고 싶지만 손색없는 라이브 공연을 할만큼 역량있는 가수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제작진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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