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취업문]대기업 입사 갈수록 좁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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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지만 대기업들의 올해 신입사원 채용계획이 겨울 날씨만큼이나 얼어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기 취업에 실패한 대학 졸업자들은 경기회복을 기다리며 하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대부분 하반기로=지난해 1천2백50명을 채용했던 현대.기아자동차는 올 상반기에는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다. 하반기에도 경기상황을 봐가며 채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대한항공도 하반기에나 경기상황을 봐서 결정할 예정이며, 두산도 하반기에만 3백명 가량을 뽑을 예정이다. 롯데그룹 인사담당자는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채용 인원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면서 "경기가 크게 좋아지지 않으면 앞으로 대규모 공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현대건설.현대산업개발.새한.진로 등 4개사는 아예 뽑을 계획이 없다.

뽑기는 뽑을 예정이지만 아직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기업도 많다.

현대중공업.동국제강.동양그룹.제일제당 등은 경기가 불확실해 채용 규모와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 잘 나가는 곳은 늘린다=삼성은 지난해와 비슷한 4천5백명 가량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나 채용인원 중 80% 가량을 이공계 출신으로 뽑을 예정이다. 계열사별로는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전자.금융 관련사들이 많고, 섬유.무역.건설 부문은 채용 규모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LG-EDS시스템은 지난해보다 2백명이 많은 1천명을 올해 채용할 계획이다. LG전자도 이공계통의 연구개발(R&D)인력을 인재확보 차원에서 많이 뽑을 예정이다.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인 6백60여명을 뽑을 예정인 SK그룹은 계열사 중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SK텔레콤과 SK C&C 위주로 늘릴 계획이다.

한솔그룹도 한솔CSN과 한솔텔레컴이 정보관련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어서 올해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10% 가량 늘어난 2백70명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효성그룹도 지난해보다 많은 6백명 가량을 뽑을 예정이며, 핵심사업인 섬유.정보통신 분야와 R&D 인력을 보강할 예정이다.

◇ 수시채용으로 선회=기업들이 신입사원을 공채하기보다 경력자를 수시채용하는 방식을 갈수록 선호하고 있어 그나마 대졸자들의 구직기회를 잠식하고 있다.

올해 초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4백30여개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가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시키는 것보다 경력사원 채용이 이익" 이라고 답했다.

SK그룹 관계자는 "계열사에서 공채 대신 수시채용을 하는 경우엔 해당 업무를 2년 이상 경험한 경력자를 선호하고 있다" 면서 "특히 벤처기업으로 나갔던 인력이 대거 돌아오는 것도 경력자 채용을 늘리고 있다" 고 말했다.

제일제당은 1997년부터 수시채용과 공채를 병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각 부서장이 필요한 인력을 해당 분야에서 경험자를 중심으로 뽑고 있다" 면서 "업무를 익히기 위해 새로 연수를 보낼 필요도 없고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어 장점이 많다" 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박찬영 팀장은 "올해부터 결원이 생기거나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즉각 경력자들을 인터넷을 통해 뽑는 수시채용 규모를 늘릴 예정" 이라면서 "앞으로 국내 채용시장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능력에 따라 언제든지 회사를 옮기는 현상이 흔해질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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