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씨 '노자를 웃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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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가공할 한학(漢學) 실력과 동양고전 해석 역량으로 도올 김용옥씨를 매섭게 몰아부쳐 우리 지식사회를 놀라게 했던 '노자를 웃긴 남자'의 '얼굴없는 저자' 이경숙(41) 씨.

그는 어떤 인물인가. '과연 실존하는 인물이기는 한 것인가'하는 궁금증까지 자아냈던 문제의 인물인 그가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후속 신간 '노자를 웃긴 남자 2'를 펴내며,'1960년 마산 출생'이라는 정보외에 자신에 관한 신상정보를 밝히길 완강히 거부했던 이씨가 처음으로 중앙일보 기자와 만났다.

이씨에 대한 첫 인상은 책에서 보여준 빠른 호흡의 남성적 문체와 대조적으로 뜻밖에도 전업주부인 보통 아줌마였다.

중학생 딸을 포함한 딸 두명을 키우는 어머니이기도 한 40대 초반의 그는 마산 현지의 집 부근에서 이뤄진 기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도올의 지적대로 동양학 9급,그 이상이었다.

이를테면 '노자를 웃긴 남자'는 도올 김용옥 철학에 대한 전면적 비판의 서막을 연 책.도올의 '노자와 21세기'(통나무) 와 EBS TV강연을 타격목표로 했다. 따라서 최근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도올 논쟁'의 실질적인 진원지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통해 이씨는 도올이 비전공자가 덤비기엔 결코 만만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자신의 책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인상비판은 다소 비겁한 행위라고 밝혔다.

또 도올의 강의를 올바르게 유도하여 우리 사회의 지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데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씨와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저자에 대한 궁금증은 우선 학력 등 공부과정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와 어떻게 공부했다고 밝히면 누구나 하버드대와 비교하면서 '별거 아니네'라며 예단할 것이 뻔하다. 그런 우리 사회 편견에 도전하고 싶어서라도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라고만 밝히고 싶다. 하버드대를 나오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다."

-베스트셀러를 낸 공인으로서 최소한의 신상정보는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책으로 판단해 달라. 내가 책에서 정작 말하고 싶던 것은 학력이나 권위에 맹종하는 풍조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이 부분에서 시대 조류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도올이 80년대 초반 귀국했을 때만해도 하버드대를 나온 사람이 동양학을 한다는 것은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이런 시대 변화의 맨 앞줄에 이씨가 있는지 모른다.)

-좋다.어쨌거나 무시할 수 없는 수업과정 내지 집안 분위기는 짐작이 간다.

"나는 어머니 김영희(3년전 69세로 작고) 를 가장 존경한다.경성사범 출신인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별후(저자가 10살때) 불교에 심취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다.생전에 사찰에서 설법도 하면서 '선생 보살'로 유명했던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어머니에게 직접 한문을 배웠나?

"집에 책이 많았으며 어머니는 항상 책을 손에서 떼지않고 사셨다. 책속의 불교이야기는 어머니 영향이다."(실제로 이씨는 유가와 도가에 대해서는 분명히 구분하면서도 불교와 도가에 대해서는 공통점을 지적하고 있다.이씨의 노자철학에 대한 통찰력은 불교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1권에 보면 17살때 우연히 다락방에서 일본판 도덕경을 발견하고 감동받았다.
"사실이다."

-당시 한문과 일본어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도덕경 원문은 한문이라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

-1권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2권에서도 도올을 거칠게 비판하고 있는데,도올이 본격적으로 대응해온다면 겁나지 않은가.

"애초에 컴퓨터통신에 재미있게 글을 쓰면서 시작된 탓이다.만약 3권을 내게 된다면 노자철학에 관한 나의 생각만으로 펴낼 것이다."

-도올이 반응을 해 온다면 전면에 나서 대응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도올과 연락해본 적은 있나.

"개그 쇼가 따로없는 도올의 TV강의를 보고 바로잡아 줘야겠다고 생각해 도올 측에 접촉을 시도했지만 무산된 적이 있다."

-도올이 특별히 비판이 대상이 된 이유는.

"오래 전에 읽어서 거의 잊고 지내던 도덕경에 대한 생각을 도올이 되새겨 주었기 때문이다."

-도올의 장점은 없는가.

"도올은 그리 만만한 학자가 아니다.특히 80년대 부터 우리사회에 동양학 붐을 일으킨 공은 인정해야 한다.하지만 그의 해석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책에서 자신의 번역만을 '바른 번역'이라고 한 것은 지나친 표현 아닌가.

"글쎄다.처음엔 나의 애칭을 따서 '구름 번역'이라고 했다.그렇게 표현해야 옳다고 생각한다.짧은 시간에 출판하는 과정에 수정못하고 1권을 냈고,2권도 20일만에 써내면서 1권의 관행을 따랐다."

-새로 펴낸 2권은 어떤 내용인가.

"1권에 이어 도덕경 11장에서 20장을 다룬다.1권이 컴퓨터통신에 쓴 글을 그대로 출판한 책인데 반해,2권은 오직 출판을 위해 새로 쓴 글이다."

-도올 번역과 당신 번역의 차이는.

"나는 도올처럼 화려하게 정보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도덕경의 한 장 한 장을 일관성 있게 풀이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화려한 밑반찬에 가려 도덕경의 진수를 놓쳐선 안된다."

-1권과 2권의 강조점이 차이가 난다. 예컨대 1권에선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강조를 하더니, 2권에선 유아주의(唯我主義) 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노자를 개인주의자로 그리고 있다. 무슨 차이인가.

"실제로 도덕경의 구성이 그렇게 되어 있다.유아주의라고 까지 할 것은 없지만, 노자가 책을 쓴 시대는 전쟁이 일상화되었던 난세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난세에는 자신과 가정을 유지하는 길을 찾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리더십과 개인주의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노자의 진실에 가깝다고 보는가.

"개인주의 쪽이다.그것이 유가와 구별되는 도가철학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본다.하지만 노자에서 개인주의 처세론에 내포된 정치적 주장도 읽어내야 한다."

-군주에게는 성인(聖人) 의 리더십을 요구하지만,민중에게는 양생(養生) 의 지혜를 발휘하라는 말로 보아도 되는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학계에선 그동안 왜 이런 해석을 하지 못했을까.

"고정관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스승의 학설을 답습해야만 살아남는 구조에서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없다"

-한문 문법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도덕경 14장의 '시지불견(視之不見) '에 대한 해석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이는데.

"제일 고심한 부분이다.기실 이 구절은 동양철학의 핵심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시가 동사고 불견을 목적어로 보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풀었다."

(참고로 1권에 나오는 오대양 육대주를 주유했다는 표현에 대해 저자는 컴퓨터통신에서 재미있게 글쓰는 과정에서 나온 과장표현이지 사실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경숙은…

극력 고사하는 이씨를 설득해 만난 그의 첫 인상은 다소곳한 한국의 전형적 아줌마였다.성격도 내성적으로 보였다.

1960년 마산에서 태어났으며,10년간 컴퓨터통신에서 Clouds(구름) 이란 ID로 필명을 날렸고, 지금은 자신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99년에 출간한 『마음의 여행』(정신세계사) 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역사, 종교, 군사, 육아일기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도덕경 해석사에 덧쓰워진 신비주의를 벗겨낸 이씨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자식교육때문이다.

이씨는 두 딸이 성장하면 독자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앞으로 주역에 관한 글을 쓸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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