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의 내면 고백 '윤치호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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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 개화.자강운동의 '대명사' , 일제시기 조선 기독교의 원로, 일제 말 친일파의 '대부' . 좌옹 윤치호(佐翁 尹致昊, 1865~1945) 에 대한 편역자 김상태(서울대 강사) 씨의 평은 일반인 누구라도 공감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좌옹의 일기다. 그는 60년 동안(1883~1943) 일기를 쓴 대단히 치밀한 인물이었다. 그것도 한자로 쓴 초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썼다. 이 책에 실린 일기는 전체 일기 가운데 일제시대에 해당하는 부분을 뽑아 편역한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70~80년대 후손들로부터 이 일기를 입수해 11권의 책으로 편집.보관해 왔다.

이런 배경 설명은 이 일기의 사료적 가치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일기가 진솔한 내면 고백의 마당인 이상, 윤치호란 비중 있는 인물의 일기는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문제는 일기의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의 대목이다. 이른바 식자층이 제도권 교육에서 배운 일제시대의 보편적 역사에 대한 놀라울 만한 이견(異見) 과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무궁무진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친일(親日)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당대 이른바 '근대적 지식인' 들의 현실인식은 어떠했는가 등 흥미 있는 단서가 부지기수이다. 물론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윤치호라는 개인이 서 있다. 그가 서재필.이상재와 함께 독립협회의 리더에서 말년 친일의 대부로 변질돼 가는 과정은 근대사의 비극적 단상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이 일기에서 윤치호는 거침없이 '독립운동 불가론' '민족성 개조론' '내선일체(內鮮一體) 론' 등을 외치면서 '주관적 애국자론' 을 전개해 나간다. 이런 윤치호의 사상과 행동을 비판하고 해석하는 일은 학자의 몫으로 일단 돌리자. 다만 우리 역사에서 자기 고백서로 이만한 성과가 과연 있었는가. 그 솔직한 토로만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이 책에서 주요 사안별로 발췌한 것이다.

<일기에서 발췌한 글>

▶조선 독립 비관론〓 "최남선군 처럼 우리가 일본의 통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걸 파리강화회의에 알리는 게 조선독립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바보들 같으니!" (1919년 1월 29일)

▶고종 독살설〓 "홍건이 민영휘씨에게 들은 바로는, 고종황제가 한약(養胃湯) 을 한 사발 먹고 난 후 한 시간도 못되어 현기증과 위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잠시 후 황제의 육신이 심하게 마비되어서, 민씨가 도착했을 때 황제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고 한다. " (19년 2월 11일)

▶유길준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련설〓 "물론 유씨(유길준) 는 그 음모(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의 지휘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 음모를 알아채는 걸 방해하려고, 그와 이시즈카씨가 날 저녁식사에 초대했던 것 같다. " (19년 4월 17일)

▶민족성 개조론〓 "민족적 자부심이 있는 곳에서는 민족차별의 심리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조선인들이 다른 민족과 똑같은 대우를 받고자 원한다면, 다른 민족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 " (20년 8월 22일)

▶반(反) 지역감정론〓 "서북파의 지도자인 안창호씨가 이런 말을 했단다. '먼저 기호사람들을 제거하고 난 후에 독립해야 합니다.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다. " (31년 1월 8일)

▶애국자론〓 "난 조선의 애국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만주정책이 성공하길 빈다. " (32년 2월 22일)

▶내선일체(內鮮一體) 론〓 "난 지금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운명은 일본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조선인들 입장에서 최상의 이익은 일본인과 하나가 됨으로써 증진될 수 있다는 것 등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 (38년 6월 8일)

▶다민족론〓 "난 조선의 모든 걸 일본화하려는 이 열병(창씨개명) 이 꽤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처사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이다. 일본이 열망하는 대제국은 당연히 다민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40년 1월 4일)

▶백인혐오증〓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처음으로 상하이에 갔을 때, 잘난 체하는 영국인들의 조계 방향에 있는 수초전 다리 바로 건너편 공원 어귀에 중국어와 영어로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 라는 글귀가 적힌 긴 표지판이 걸려 있는 걸 보고 난 설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 (41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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