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야구영웅들이 가진 수치스런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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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흔히 야구 영웅이라면 대단한 기록들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구 영웅은 반드시 불멸의 기록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이 영.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511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313패라는 치욕스런 최다패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투수들의 역할 분담이 확실하게 굳어진 현대야구에서 사이 영의 511승은 불멸의 기록이 될 것이지만, 313패라는 기록 역시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1999년 21승을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호세 리마, 하지만 2000시즌은 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시즌이었다. 1승 뒤 끝이 보이지 않는 연패 행진을 이어가며, 44년만에 투수 최다 피홈런의 주인공까지 되는 불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등판하는 경기마다 거의 이길 것 같지 않았던 리마의 패전이 16패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이 영의 313패 역시 앞으로 깨지기는 힘들 것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했던 선수 행크 에런,그 역시 생애 통산 328개라는 병살타를 기록하며 당당히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다. 홈런타자로서는 비교적 삼진을 적게 당했던 에런이지만, 그 대신 그는 자신이 기록한 홈런수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병살타를 쳐냄으로써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또 한 번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홈런사에 관해서라면 빼놓을 수 없는 타자인 레지 잭슨, 그는 1971년 디트로이트의 타이거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우측조명탑을 직접 맞히는 158M짜리 대형홈런을 기록했을 정도로 대단한 힘을 보유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그에게도 들추어내기 싫은 기록이 있다. 21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기록한 2597개의 삼진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기록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기록이며, 그가 얼마나 헛방망이질을 많이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역 최고의 좌완투수를 꼽으라면 두 말할 것 없이 랜디 존슨을 지목해야 할 것이다. 양대리그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수상한 두 번째 사나이면서 또한 추풍낙엽처럼 타자들을 요리하는 그의 탈삼진 솜씨는 과연 최고의 투수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존슨에게 포스트시즌은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 너무나 많다.199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두 번씩이나 패전투수의 불명예를 썼던 존슨은 이후에도 휴스턴, 애리조나를 거치면서 3번이나 포스트시즌에 등판했지만 모두 패전을 기록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홈런까지 얻어 맞았다.

특히 1998년 샌디에이고의 짐 레이리츠와 1999년 뉴욕 메츠의 에드가르도 알폰소에게 맞은 홈런은 정말로 악몽이었다. 현재까지 존슨은 포스트시즌에서만 5연패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이 선수의 존재는 정말 최고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강타자 배리 본즈. 역사상 최초의 4백홈런과 4백도루를 달성했던 그는 이제 올시즌이면 17번째 5백홈런도 예상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5백홈런은 본즈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5백홈런을 치고서도 단 한번도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지 못했던 어니 뱅크스 이후 이 기록을 달성하고서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한 두번째 선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본즈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포스트시즌에만 나가면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가 이 치욕스런 기록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려면 좀더 집중력 있는 플레이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즈는 5백홈런이 아니라 6백홈런을 기록하고서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하는 최초의 선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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