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도미노 일단 막았지만 그리스 시한폭탄 계속 진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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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긴축정책을 참을 것인가, 유로 탈퇴를 각오할 것인가. 햄릿의 심경으로 그리스 국민은 유로 체제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시장도, 전 세계도 한숨을 돌렸지만 위기의 출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가 바닥까지 간 경제와 재정 재건을 향해 돌진하고, 유럽도 통합의 약점을 고치는 행동을 신속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혼란은 쉽게 반복될 것이다. 유로도, 그리스도 아직 벼랑 끝에 서 있다.

 문자 그대로 ‘국제 감시 재선거’였다. 구 여당인 신민당이 승리했다는 속보에 유로권은 물론 미국과 영국의 정상도 즉각 환영성명을 냈다. 유로권 경제의 2%에 불과한 소국 그리스가 또다시 전 세계를 뒤흔든 1개월 반. 유럽과의 대결 노선으로 금융 지원이 멈추면 그리스는 예상치 못했던 유로 탈퇴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유럽이, 세계가, 금융시장이 마지막까지 몰린 상황이 됐다.

 유럽 내에는 그리스를 단념하자는 의견도 일부에서 부상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은행 위기를 비롯해 전 세계로 위기가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훨씬 컸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그리스를 분리해 유럽 통합의 역사에 상처를 남기는 선택은 할 수 없었다. 그리스 국민도 유로 이탈에 따르는 인플레이션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깨닫고 미지의 변화 대신 안정을 우선했다. 그리스가 막판에 유로에 남게 됨으로써 유럽은 전 세계를 뒤흔들 위기의 도미노를 간신히 막았다. 하지만 이 결과가 임전 태세를 풀게 하는 계기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2009년 가을,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조작됐던 사실이 발각된 게 유럽 재정위기의 발단이었다. 이후 유로권 및 유럽연합(EU)의 정상과 재무장관은 위기 대응을 둘러싸고 몇 차례나 낮밤을 가리지 않고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2010년 5월의 그리스에 대한 첫 번째 금융 지원 이후 근본적인 대처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채 ‘시간 벌기’가 계속돼 왔다. 남유럽 등 위기국의 국민은 재정 적자를 줄이는 긴축이나 구조 개혁의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독일 등 지원국들은 노력을 게을리하는 나라를 왜 자신들의 세금으로 도와줘야 하느냐며 반발한다. 유럽 통합의 우산 속에 있으면서 각국 정상들은 ‘자국의 논리’를 외면할 수도 없다. 그 틈새를 시장이 찌른다.

 그리스의 구 여당이 정권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과반수보다 10여 석 많을 뿐이다. 선거전에서 주창했던 ‘긴축정책 조건 완화’를 놓고 EU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그리스 정국이 다시 불안정해지면 우려는 순식간에 재연될 것이다.

2년여의 위기를 통해 드러난 유럽 통합의 균열을 고치기 위해 지원국과 위기국의 갈등의 골을 메우려는 정상들의 결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재정·경제 및 금융감독의 통합을 추진하고 한편으론 공동 채권을 발행하는 ‘유로 공동 채권’ 등의 로드맵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게 급선무다. 여기서 느슨하게 하면 늘 그랬던 것의 반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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