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공단 “물 좀 주소” … 70㎞ 밖서 물 모셔오기 안간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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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 공장도 목이 탄다. 충남 서산시 대산공단 입주 기업들의 산업용수원인 대호저수지는 상당 부분 바닥이 드러났다. 물이 있는 곳까지 새로 물길을 파야 할 정도다. 19일 새로 낸 대호저수지 물길에서 양수기가 물을 길어 올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산업현장이 물 부족에 신음하고 있다. 가뭄이 길어진 때문이다. 지난 4월 25일 전국에 30~120㎜의 비가 내린 뒤 50일 가까이 전국에 비다운 비가 오지 않고 있다. 이 바람에 물이 부족해 정상 조업을 위협받는 곳들이 있다.

충남 서산의 대산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대산산업단지에는 삼성토탈·현대오일뱅크·호남석유화학·LG석유화학·KCC 5개사가 입주해 있다. 이들 공장은 평소 인근 대호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 공업용수로 사용했다. 평소 1억2000만t을 수용할 정도로 물이 풍부했던 대호저수지는 이번 가뭄에 저수율이 4%로 떨어졌다. 저수지 바닥은 벌겋게 맨살을 드러냈고, 그나마 가장자리 쪽은 습기가 마르다 못해 바닥이 갈라졌다. 한국농어촌공사 서산태안지사의 안계인 대호저수지관리소장은 “저수지가 생긴 후 30년 동안 이렇게 말랐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는 작년 8월 중순 마지막 장맛비가 걷힌 뒤 큰 비가 온 적이 없고, 겨울에 눈도 적었던 데다 봄비도 예년의 30~40% 수준에 그쳤다. 안 소장은 “산업용수란 것이 갑자기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가뭄에 결국 저수지 바닥이 드러나게 됐다”고 했다.

 대산산업단지 5개 공장은 급기야 지난 15일 70㎞ 밖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아산정수장에서 물을 끌어쓰기 시작했다. 아산정수장이 긴급 추가 생산한 하루 13만t의 물을 관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홍보팀 고인수 차장은 “대호저수지에 물이 없다고 공장마저 놀릴 수는 없어 택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멀리 있는 물을 끌어오는 일은 경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 한 공장 관계자는 “대호저수지 물을 쓸 때는 t당 150원 정도가 들어갔지만 아산정수장 물을 끌어다 쓰는 데는 t당 300원이 들어간다”며 “물 값만 두 배를 쓰는 셈인데, 5개사를 합하면 이 돈이 하루 1950만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운데 물 부족이라는 또 하나의 복병과 격전을 치르고 있다”며 “비용 부담이 만만찮아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 물 관련 직원들은 18일 한때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소식에 기대감을 표출했으나 남해안에 머물던 장마전선이 다시 남하한 채 당분간 비 소식이 없을 것으로 전해지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대산산업단지의 경우 울산이나 여천과 달리 국가에서 공업용수를 관리해 주는 ‘지원관리공단’도 없어 입주 기업들은 대호저수지의 저수량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 부족으로 원료 조달을 걱정하는 회사도 있다. 지난해 1억3500만 개의 ‘햇반’을 생산한 CJ제일제당이다. 가뭄이 길어지면 원료인 쌀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CJ제일제당 측은 이 상태가 지속되면 7월 중에 쌀 수급량이 20~30%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원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1997년 햇반을 처음 출시한 뒤 가뭄 때문에 생산 감소를 걱정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마른수건 쥐어짜듯’ 각종 물 절약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요즘 화장실 공사를 하고 있다. 변기 물내림 레버에 절수장치를 다는 작업이다. 수돗물의 압력을 높여 적은 물로도 많은 변기를 잘 씻어내릴 수 있는 장치다. 생산현장에 꼭 필요한 물이 부족한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다른 데서 물 사용량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이 회사는 같은 작업을 이달 초 아산공장에서 마무리한 뒤 울산공장으로 확대했다. 울산공장은 지난해엔 샤워기 꼭지도 절수용으로 전부 교체했다.

 공업용수를 재활용하려는 노력도 치열하다. 포스코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하루에 약 15만t의 공업용수를 사용한다. 포항제철소는 형산강 인근 댐에서, 광양은 수어댐에서 부족한 용수를 조달받는다. 이들 공장은 제철 과정에서 사용한 용수를 각 공장에 설치된 폐수처리 설비에서 1차 처리한 후 98~99%를 재활용한다. 포항 지역 가뭄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포스코 경영진들이 ‘석 달 정도는 무리 없이 버틸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느긋한 것도 용수를 재처리해 쓰는 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그런 포스코도 내년까지 ‘공업용수 10% 줄이기 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강이나 낙동강처럼 큰 물줄기에서 공업용수를 끌어오는 회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상 풍부한 산업용수가 필수적인 삼성전자는 기흥·화성 두 사업장 모두 팔당댐 물을 쓰고 있어 아직 가뭄 피해를 받지 않고 있다. 한 해 147만t가량의 공업용수를 쓰는 두산중공업은 창원공장이 낙동강 바로 옆에 있어 가뭄 피해가 없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낙동강은 아직 수량에 여유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태희·문병주 기자

저수율 저수지와 댐 같은 곳에 얼마나 물이 차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율이다. 19일 현재 전국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49%다. 가득 차 있을 때의 절반밖에 물이 없다는 의미다. 전국 저수지와 댐의 저수율은 국가재난정보센터 홈페이지(www.safekorea.go.kr)나 농업기반시설관리(rims.ekr.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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