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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통령 누가 돼도 한·미 동맹은 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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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지난주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는 한·미 관계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재차 확인해 줬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사이가 아주 좋다. 정상 간의 친밀한 관계가 한·미 관계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내가 백악관에서 근무할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사이는 이처럼 친밀하지 않았다. 당시 한·미 관계는 양국 동맹의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합의를 이룬 시기였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예를 들면 한국군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비자 면제 합의, WEST(대학생 연수) 프로그램, 미 대외군사판매(FMS)에서 나토+3(나토 회원국과 호주·뉴질랜드·일본을 합친 미국의 무기 판매 최혜국) 대우 등등이 있었다. 하지만 두 지도자는 지향하는 이데올로기가 서로 다른 데다 성격도 조화를 이루기 힘든 바람에 양국 관계는 약간의 파열음을 냈다.

[그래픽=박용석 기자]

 하지만 지도자들의 성격만 양국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펼친 글로벌 지향의 대외정책은 동맹관계를 격상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과 잘 맞았다. 아프가니스탄과 코펜하겐 기후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국제개발사업 등에서 한국은 유럽 국가들과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핵심국가 역할을 맡았다. 미국처럼 한국도 중앙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지구촌 곳곳에 4000여 명에 이르는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진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내가 아는 백악관 출입기자 한 명이 “오바마는 교육을 비롯한 미 국내정치에 대해 연설할 때 끊임없이 한국의 사례를 인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국에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직업윤리도 도입하기를 원한다”면서 이런 내용을 기사화하려고 한다고 귀띔해 줬다(그가 이런 기사를 이미 썼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 다른 외부 요인들도 한·미 관계 강화에 기여했다. 북한의 호전성은 두 나라 사이를 보다 가깝게 해준 주요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었던 일본의 예기치 않은 변화도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됐다. 일본에선 우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관심이 적은 민주당이 집권하는 등 국내 정치적 변화가 생겼다. 아울러 2011년 3월 11일 지진·쓰나미(지진해일)·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비롯한 3중 재해를 당하면서 대외관계에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문에 미국은 기존의 아시아 전략에 손질을 가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올 연말로 예정된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한·미 동맹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이 청와대를 보수적인 후보에게 내주든, 진보적인 후보에게 맡기든 세 가지 추세가 동맹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첫째, 양국 관계는 현재 한·미 관계를 묘사할 때 쓰고 있는 ‘최상급’의 상황을 끝내고 ‘정상화’할 것이다. 신임 한국 대통령이 전임자의 정책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은 정치에서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후임 대통령은 양국 관계의 ‘균형’에 더 무게를 두게 될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다. 물론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처럼 대외관계의 중심을 뒤바꾸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도 대중이 일반적으로 양국 동맹에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미국에 호의적이며, 75%는 한·미 동맹이 통일 뒤에도 유지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차기 정부에서 양국관계는 전략적으로는 바뀌지 않겠지만 분위기에서는 변화가 올 것이다.

 둘째, 한국의 차기 정부는 대북 정책에서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과는 사뭇 다른 정책을 펼치게 될 것이다. 물론 햇볕정책의 조건 없는 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같은 보수 후보조차 향후 북한에 대해 ‘신뢰외교와 균형정책’이라는 원칙에 따라 보다 유연한 정책을 펼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과 워싱턴은 양국 대통령 선거를 끝낸 즉시 적절한 대화와 정책 조율만 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셋째, 앞으로 서울과 워싱턴의 차기 지도자에게 한·미 동맹 유지는 중요한 일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청와대와 백악관의 최우선 과제는 국내 정책이 될 전망이다. 심각한 실업사태를 겪고 있는 미국의 경우 새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차기 지도자도 사회적·경제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성장과 분배’를 내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보살피면서 나라를 성장시키는 정책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 지도자는 주요 동맹국과의 관계에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될 공산이 크다.

 한·미 양국은 이번 2+2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더 광범위한 전략을 마련하지는 못해 아쉽다. 회의에서 양국 관계의 미래전략이 아닌 현안과 전술만 다뤘다는 사실은 이번 회담이 서울과 워싱턴의 대통령 임기가 동시에 끝나가는 가운데 열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최근 한국의 고위관료들은 물론 대통령 예비후보들까지 미사일 사거리 확대와 같은 한·미 이슈에 끊임없이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한·미 동맹을 더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릴 확대된 전략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여기에서 진일보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칼럼에선 이러한 한·미 동맹 발전을 위한 전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겠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