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시시각각] 우위안춘, 침묵의 가면 벗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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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논설위원

잔혹하다는 이유로, 역겹다는 이유로 악마의 얼굴과 피 묻은 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악마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여기 우위안춘(오원춘·42)이 있다. 그는 지난 4월 1일 밤 수원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한 뒤 강간하려다 살해한다. 체포 당시 그의 집 화장실에선 비닐봉지 13개가 발견된다. 봉지엔 피해자 시신에서 떼어낸 356개의 살점이 있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건 한 인간의 마음속에 그 정도의 절대 악(惡)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우위안춘이 무엇을 위해 여성을 살해했는지, 왜 그토록 무자비하게 시신을 훼손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범행 동기·목적 부분만 나오면 입을 다물었다. 검사가 추궁하자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요. 사람을 하나 죽이러 나왔는데 마침 그 여자가 오길래 데리고 들어가 강간하고 죽였습니다. 됐나요?”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이동훈) 심리로 진행된 두 차례 재판에서 우위안춘은 검찰이 제시한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5월 11일 첫 공판. 재판부와 우위안춘 사이에 이런 문답이 오갔다.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는데 성폭행 혐의를 왜 인정했습니까.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왜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빨리 끝내 달라.” 그러나 이동훈 부장판사 등 3명의 판사는 더 깊이 파고들었다. 법원 관계자는 “피해자·현장 사진을 직접 본 것과 보지 않은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재판부가) 참혹한 사진을 보고 이대로 넘겨선 안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고 전했다. 재판부가 “단순히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고 판단한 근거는 아홉 가지였다.

 “사체 훼손 과정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휴대전화로 음란물을 검색하는 등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6시간에 걸쳐 비교적 일정한 크기와 모양으로 살점을 떼어냈고 장기는 손상되지 않았다….”(판결문 중에서)

 결론은 “강간 목적뿐 아니라 불상(不詳)의 용도에 사체 인육을 제공하기 위한 의사 내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동기·목적 등을 주요 양형(형량 결정) 이유로 들어 사형을 선고했다.

 이제 정의는 실현된 것일까. 2심, 3심을 거치면 모두 끝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위안춘은 한사코 침묵으로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또 다른 희생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 유족의 주장처럼 인육 유통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다. 범죄학자들은 “우위안춘의 범행 과정과 수법으로 볼 때 이번이 첫 번째 살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검찰과 경찰은 재수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할 수 있는 조사를 다 했다. 단서만 있다면 재수사에 나서겠지만 지금으로선 더 조사할 부분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이 집중 조사를 벌인 건 체포 후 기소 때까지 3주 남짓이었다. 재수사가 부담스럽다면 보강 조사로 불러도 좋다. 그를 다양한 분야의 범죄·심리전문가들 앞에 앉혀놓고 정밀 조사를 벌여야 한다. 법원이 ‘인육 목적 살인’ 가능성을 공론화한 상황에서 수사기관은 팔짱을 끼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미국 추리소설 『시인(The Poet)』에서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FBI 요원은 주인공인 신문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놈들이 그런 짓을 하는 동기를 찾아내고, 그런 짓을 하게 만드는 충동을 이해하는 것,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우리는 그런 놈들을 가리켜 달나라에서 온 놈들이라고 해요… 우리가 할 일은 그놈이 살던 달나라를 지도에서 찾아내는 거고요.”

 우위안춘이 걸어온 범죄의 궤적을 흔들리지 않는 냉혹함으로 밝혀내는 것. 그것이 도시의 불 켜진 주택가에서 야수의 손에 죽어간 여성의 원(怨)과 한(恨)을 푸는 길이고 제2, 제3의 악마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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