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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돈 벌려 해선 안 돼 … 요구도 수술하며 해야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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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백병원 백낙환 이사장이 15일 서울 저동 백병원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날 백 이사장은 대한의사협회의 수술 거부 움직임에 대해 “수술하면서 뭘 요구해야지”라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의사는 봉사직입니다. 의료행위로 돈을 벌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인제대·백병원 백낙환(86) 이사장이 말하는 의사의 길이다. 백 이사장은 백병원 설립 80주년 인터뷰에서 전국 5개 백병원(서울·상계·일산·부산·해운대)을 키운 비결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병원을 세우면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병원은 병을 고쳐주는 곳이며 그걸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병원을 늘리면서 부유한 계층이 많은 데보다는 서민이나 중산층 지역을 택했다. 백 이사장은 요즘도 매주 서울과 부산의 백병원과 김해 인제대를 오가며 간호사 면접, 학장·처장 회의 주재 등 경영을 직접 한다.

 -80년 백병원을 이끌어온 비결은.

 “인술제세(仁術濟世:의술로 세상을 구한다)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와 관련, 백 이사장의 딸인 백수경 부이사장은 “백병원은 약품 납품이나 병원·학교 건설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적이 없다”며 “이사장은 의사들에게 ‘누가 뒷돈을 주면 면전에서 거절하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고(故) 이태석 신부 흉상 제막식을 했다고 하는데(이 신부는 인제대 의대 출신이다).

 “후배들이 그 양반같이 되라는 건 아니지만 그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되새겼으면 해서다. 우리 학교 의대 출신들이 세계 오지에 살면서 이 신부와 같은 봉사의 길을 걷는 사람이 9명이다.”

 -포괄수가제를 어떻게 보나.

 “약을 덜 쓰고 불충분하게 검사를 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잘못하면 질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행위별로 진료 수가(酬價)를 받으니까 검사를 많이 하고 과잉진료를 많이 한다. 그래도 한번 해보는 거다. 찬성이나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의사협회가 수술을 거부하겠다는데.

 “의사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와 떨어질 수 있다. 의사는 항상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수술하면서 뭘 요구해야지….”

 그는 10년 전 의료에 산업이라는 수식어를 처음 붙이면서 의료산업화를 주창해 왔다.

 -의료산업화가 잘 진전되고 있나.

 “진도가 많이 나가지 못했다.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보다 못하다. 우리가 미국에서 의료를 배워 왔지만 수술·재활치료 등 미국을 앞서는 분야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의 생체간이식 수술은 세계 최고다. 한국이 동양권의 중심부에 있다. 이런 점들을 활용해 아시아 환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장벽(제도의 규제)이 없으면 의료산업이 반도체·자동차를 능가할 수 있다.”

 -의료산업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병원만한 데가 없다. 의사·간호사·약사·의료기사 등 모두 고급인력이다.”

 -건강관리 비결은.

 “소식(小食), 많이 움직이기, 긍정적 사고, 금연·금주다. 월요일마다 독서 모임에 나간다. 최근 『중동은 불타고 있다』를 읽었다. 아침마다 여러 신문을 꼭 읽는다.”

 그는 의료계에서 ‘가장 바쁜 80대 최고경영자(CEO)’ ‘영원한 청년’으로 불린다.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개인 재산은 집밖에 없다고 한다. 번 돈은 주로 장학금·교수연구비·지역환경 보호 등에 썼다. 그는 자서전 『영원한 청년정신으로』에서 “재산은 사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20년 넘은 부산의 사택(105.6㎡ 아파트) 세면기와 전등 수리공이 “우리 집보다 못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절약을 강조한다. 15일 오후 무더위에도 서울 저동 백병원 13층 이사장실에서 선풍기를 틀고 인터뷰했다.

◆백낙환=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경성제국대학 이과을류(서울대 의대 전신)를 나온 외과의사. 큰아버지이자 당대 명의인 백인제 박사 슬하에서 자랐다. 한국전쟁 때 백 박사가 납북된 뒤 병원 경영을 맡아 지금의 백병원을 일궜다. 3289개 병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410만 명을 진료했다. 79년 인제의대(89년 종합대 승격)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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