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23>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나와 아우는 물건을 들이고 내는 일이나 밤 늦게 어머니가 피곤에 지쳐 잠들면 점포의 나무 문짝을 닫는 일을 거들 뿐이었다. 가게에 딸린 좁다란 방에 어머니와 아우가 자고 나는 취사 공간의 옆에 있는 사다리로 올라가 지붕 밑 다락에서 잤다.

며칠 있다가 내가 주섬주섬 짐을 꾸리니까 눈치를 챈 아우가 어머니에게 귀띔을 했다. 어머니는 이제는 완전히 단련이 되어서 별로 걱정스러운 빛도 보이지 않았다.

-왜 어디 갈라구?

-예, 절에 가서 책두 좀 보구 글을 쓸라구요.

어머니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시장 한복판이라 날마다 장사하는 소리와 온갖 소음으로 조용한 때가 없었다. 어린 아우는 내가 집을 나가버리기도 하고 거의 죽었다 살아나기도 하고 베트남으로 가버리기도 하면서 어머니가 노심초사하는 바로 그 곁에 남아서 성장했다. 그는 나와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내가 형 때문에 얼마나 피해를 받았고 형 그늘에 치였는지 아느냐고. 사실 형 때문에 어머니는 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나는 특히 십대 때 어려웠다고. 형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는 외로웠고 형만 생각하는 어머니가 야속했다고.

내가 배낭에 짐을 꾸려서 새벽 차를 타려고 아직 널판자 덧문이 닫힌 가게를 나설 때, 어머니는 시장 모퉁이에까지 나를 따라왔다.

- 어디라두 가면 편지라두 해라.

그러고는 지폐 몇 장 접어서 내게 내밀었고.

대위와 나는 지난 몇 해 사이에 여러 번 탔던 그 완행열차를 탔다. 화장실 쪽 통로의 그 지린내와 사람으로 가득 찬 통로를 쉴새없이 오가는 불법 잡상인들의 김밥,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따끈한 우유요, 외치는 소리도 여전했고, 짐 얹는 선반에 올라앉고 통로와 승강구마다 털퍼덕 주저앉은 가난한 승객들도 여전했다.

지금은 한 시간 정도 걸리던 천안에 도착한 것은 오후 네다섯시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천안 역에서부터 시내를 향하여 걸어갔다. 나는 그의 동네가 보이는 변두리 시장 모퉁이에서 푸줏간을 발견하고 들어가 돼지고기 한 근을 샀다. 그는 나를 말리지 않았고 부근 노점상에서 수북이 쌓아놓고 팔던 센베이나 눈깔사탕 같은 허드레 과자를 한 봉지 사들었다. 이게 그의 초라한 귀향이었던 셈이다.

그의 집은 오래된 적산가옥 같았는데, 대문이 골목 안쪽에 있는 데가 아마 주인이 사는 안집이었던 모양이고, 바깥 큰 길가 쪽에 있던 곳이 세를 든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입구에 영등포 집 앞에 가죽나무가 서있었듯이 여기엔 엉뚱하게도 가로수인 플라타너스 나무가 대문 옆에 바짝 대어져 서있었다. 집에 들어서기도 전에 초등학교 이삼 학년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러닝 바람에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문가에서 서성거리다가 대위를 향하여 달려왔다.

- 아부지!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