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연줄 용인되는 한 부패 지속 부정 청탁 규제는 세계적 현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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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03면

조용철 기자

박계옥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은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 조문을 실무 지휘했다. 그는 14일 “(국민권익위원회 전신인) 부패방지위원회가 10년 전 출범했지만 지금까지 빙빙 겉돌았다”며 “ ‘빽’이나 연고를 동원한 청탁이 많고 이를 용인하는 문화가 있는 한 부패는 사라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힘과 연고를 이용한 청탁을 근본적으로 막아 부패 양산의 고리를 끊어내자는 게 법안 취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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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탁이 문제인가.
“부패는 사회적 비용과 비효율성을 증가시킨다. 사회 전체적으론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보다 더 부패가 심하다. 근원을 따져 보면 청탁 문화 때문이다. 내가 매일 받는 전화의 70%는 청탁과 관련된 내용이다. 공무원에게 왜 느닷없이 전화를 하겠나. 청탁 때문 아니겠나.”(※국민권익위원회는 각종 인허가에 대한 민원을 처리하는 행정심판과 고충처리 업무도 맡고 있다.) 이젠 청탁 문제의 심각성을 국가 발전이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그런 전화를 모두 부정 청탁으로 볼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하면 일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우선 우리 국민의 공직 사회에 대한 평가가 매우 부정적이다. 지난해 8월 권익위 여론조사에서 ‘알선과 청탁이 심각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84.9%에 달했다. 그러나 공직자는 같은 질문에서 21.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공직 사회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려면 청탁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 발전과 통합이 어렵다.”

-법안에 대한 공무원들의 반발은 없나.
“공무원에 대한 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 반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을 옥죄는 굴레로만 보는 것은 곤란하다. 법안은 사실상 공무원을 보호하는 내용이다. 부당한 정책 결정을 요구하는 청탁을 받을 경우 그 업무에서 해당 공무원을 빼도록 하는 규정을 만든 게 그렇다. 또 법이 만들어지면 거역하기 힘든 높은 사람의 청탁을 받을 때 ‘부정청탁 방지법에 따라 이런 내용을 내가 신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시시콜콜한 각종 금지 규정을 만들었다고 비판할 게 아니라 향후 공무원과 일반 국민 모두에게 ‘청탁은 안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로 우리 청탁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연고주의란 게 정(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연고주의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도 사실이다. 청탁 문화와 연고주의를 비판하면서 뒤에서 이를 즐기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니 빨리 법을 만들어 강제해야 한다. 독일·미국 등 선진국에선 비슷한 법 조항과 규정이 이미 실시되고 있다. 부정 청탁과 공직자의 사익 개입을 막는 각종 규제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부정한 청탁과 적법한 부탁이나 민원을 구분할 수 있겠나.
“법안을 만들 때 아주 고민한 대목이다. 그래서 부정 청탁이 아닌 유형을 법안 조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법안 8조에 특정 직무를 법정기한 내 처리해 달라는 요구, 민원 진행 상황에 대한 문의, 청원법 등에 따른 피해구제 요청, 정당·시민단체의 공개 제안, 언론 기고를 통한 민원 제기, 간담회·청문회 등을 통한 진정·탄원 등은 정당한 민원·제안으로 간주했다.”

-처벌 규정만 강화해 민간인 범법자를 양산할지 모른다는 반론도 있는데.
“그래서 공직자와 일반인에 대한 처벌 기준을 달리 했다. 공무원에게 부정 청탁을 한 공직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지만, 부정 청탁을 한 일반인에겐 기준을 낮춰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는 공무원에게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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