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완벽주의자의 脫연애 선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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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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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아직 웬만하면 결혼들을 한다. 결혼은 왜 할까? 혹은 왜 하지 않을까?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애 낳고 살림하는 데 정력을 허비하기에는 자기들이 인류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았다고. 참 잘났다! 일전에 언급한 재일학자 서경식은 근 30년간 결혼하지 않은 동거상태로 부인과 살았다. 이유는 이렇다. ‘상대가 언제라도 떠나갈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해’. 사람 미칠 것 같은 자유다. 꽤 늦은 나이로 결혼을 결심할 때 내게도 이유가 있었다. ‘남들과 똑같아지고 싶어서…’. 이건 좀 절박한 사유였다. 워낙 오랜 세월 혼자 살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 자꾸만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무얼 결정하는 것도 행동을 하는 것도 불쑥불쑥이었다. 두려웠다. 혼자 사는 방식이 이상상태로 여겨져서 나는 결혼했다.

詩人의 음악 읽기 브람스 현악 6중주 제2번, 일명 ‘아가테 6중주’

63세로 떠난 브람스(큰 사진, 1853년 20세 사진)는 끝내 결혼하지 않았다. 대개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 대한 연정을 이유로 드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스물한 살 무렵부터 수년간 브람스가 뜨거운 연서를 날렸던 것은 사실이다. (14살 연상의 그녀에게 너(du)라는 호칭을 썼다.) 그리고 슈만이 죽고서도 더 많은 세월 동안 극진하게 클라라 곁을 지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편이 죽고 생계곤란까지 겪는 홀몸의 클라라를 거두지 않은 것으로 보아 브람스의 사랑은 막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빈민촌 출신으로 매우 어렵게 성장한 브람스였기에 6명의 자녀를 떠안아야 하는 현실적 문제도 고려했을 것이다. 청소년기에 어렵게 자란 사람은 나중에 아무리 부유해져도 금전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법이다.

브람스도 한때 결혼을 꿈꾸었었다. 약관 25세. 아직 이름이 크게 두드러지기 전으로 야심 차게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던 때였다. 대학도시 괴팅겐의 모임에 갔다가 아가테 폰 지볼트(작은 사진)라는 여인에게 반한다. 의대교수의 딸이자 소프라노 가수였는데, 브람스의 여성 취향을 존중하는 바이지만 아무래도 미모로 보기는 어렵다. 나중에 아가테가 남긴 기록으로 보아 무척 똑똑하고 당찬 아가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했고 약혼반지도 주고받았다. 그 즈음의 브람스 사진을 보면 아가테가 준 언약의 반지를 끼고 있다.

이미 두 사람의 소문이 좍 퍼진 후였는데 결혼은 어이없이 깨졌다. 브람스 쪽에서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당신을 사랑하오! 다시 그대를 봐야만 하오! 하지만 속박당할 수는 없군요!’ 이어지는 문장은 좀 난해한데 해독을 해보자면, 자기와 함께해야만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라는 내용이다. 천하의 브람스이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고…. 솔직히 참 ‘비겁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왜 그랬을까? 당시 상황이 친구 비트만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 있다. 그때 발표한, 전력을 기울여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 대실패로 끝나가고 있었던 것. ‘나의 음악은 연주회에서 야유를 당하거나 최소한 냉대를 받고 있네. 내 작품은 가치를 잃고 말았네…’. 즉 음악가로서의 실패가 두려워 결혼을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가테를 붙잡았어야 했다. 그녀는 브람스의 편지 한 통에 팽 돌아서서 영원히 다시 그를 만나지 않았다. 이런 성깔의 똘똘한 아내와 살았더라면 브람스 음악과 삶이 우수의 화신으로 변하지는 않았으리라.

브람스는 아가테와의 사연을 음악으로 남겼다. 일명 아가테 6중주라고 부르는 현악 6중주 제2번으로 특히 1악장 구성이 그녀 이름인 AGATHE, 즉 ‘라솔라시미’를 모티브로 한 아가테 테마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테마에 대한 응답으로 ADE(라레미)가 이어지는데 독일말로 작별을 뜻한다고 한다. 그녀에게 몹쓸 짓을 했다며 자탄하던 브람스는 ‘이 곡으로서 연애에서 해방됐다’고 외쳤다.

서울시 최근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압도적으로 증가 추세다. 유럽처럼 우리도 이른바 정상가족 신화가 붕괴되고 있는 중이다. 모두가 홀로 살아가면서 인생의 어느 시기에 필요에 따라 결혼과 무관하게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사회적 육아를 강화해서 해결한다는 것. 이 막을 수 없는 대세 앞에서 결혼과 사랑의 관계를 새삼 생각해 본다.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신화였다. 대개는 타이밍 즉 결혼의 주·객관적 조건이 충족될 때 만난 사람과 결혼한다. 그렇다면 브람스의 선택은 뭘까. 그의 작품을 듣다 보면 느껴지는 것이 있다. 이토록 완벽주의자가 또 있을까. ‘일점일획 보태고 빼고 할 것이 없다’는 식의 표현이 브람스 음악에 꼭 들어맞는다. 이런 완벽주의는 바흐·베토벤의 이상으로 회귀하는 음악적 보수성을 낳았고 리스트·바그너 같은 새로운 음악 주창자들과의 대립을 낳았다. 그런데 그건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다들 열광하며 몰려가는 쪽을 따르지 않는 것이니까. 약혼과 파혼 결정 역시 그러한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천하에 바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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