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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城<장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5호 27면

장성(長城) 토굴 물을 말에게 먹이는데/ 물이 차가워 말의 골수가 상하겠네. (중략) 장성은 어찌 그렇게도 길게 이어져/ 이어지고 이어지길 삼천리./ 변방 성에는 젊은이들이 많고/ 집 안에는 과부들만 많구나./ 편지 써서 집에 보내 말하길/ “다른 데 시집가오, 기다리지 말고./ 새 시부모 잘 받들고/ 때때로 옛 낭군 생각해주오”라 하니./ 답장을 변방에 보내 말하길/ “당신 지금 무슨 말을 그리 야속하게 하시오./ 몸은 재난을 만났으나/ 어찌 다른 집 부인 되리오./ 아들 낳으면 신중히 생각해 거두어 살리지 않고/ 딸 낳으면 고기 포를 먹여 기르겠소./ 그대 홀로 장성 아래를 보지 못했는가(君獨不見長城下)/ 죽은 자의 해골이 서로 지탱하고 있는 것을(死人骸骨相<6490><62C4>)/ 머리 올려 그대를 섬기어 왔거늘/ 내 마음 답답하고 못마땅하오./ 변방의 당신 괴로움 분명히 알고 있는데/ 비천한 저만이 어찌 오래 편안히 살 수 있으리까.”

漢字, 세상을 말하다

후한(後漢)의 시인 진림(陳琳)이 지은 ‘장성의 굴로 가다가 말에게 물을 먹이다(飮馬長城窟行)’란 시다. 진시황(秦始皇)의 만리장성이 백성의 해골로 지었음을 생이별한 부부의 편지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엷다. 멀리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네/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내 대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 여정을 손꼽아 보니 2만리/ 육반산 봉우리에 오르니, 붉은 기가 서풍에 휘날리네/ 오늘 긴 끈이 손에 있으니, 언제쯤 흉악한 창룡(蒼龍)을 잡을 수 있을까.”

인민을 위한 나라를 세우겠다며 2만리 장정(長征)에 나선 마오쩌둥(毛澤東)이 1935년 장성에 올라 지은 ‘청평락·육반산(淸平樂·六盤山)’이란 시다. 마오쩌둥의 장성은 진림이 본 장성과 180도 달랐다.

중국 국가문물국이 최근 베이징 거용관(居庸關) 장성에서 ‘긴 장성, 중화의 혼(長城長 中華魂)’이란 행사를 열고 역대 장성의 총 길이가 2만1196.18㎞라고 발표했다. 고구려·발해와 서역의 성곽까지 마구잡이로 합친 수치다. 전제 왕조의 폭정에 분노하기보다 사내 대장부의 기상을 뽐냈던 마오쩌둥의 중국은 고구려·발해가 해골의 장성을 수축하는 데 동참하지 않았음을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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