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누가 쇼 하는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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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허미연
고려대 영어교육학과 4학년

“감독님, 저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서태웅은 안 감독에게 NBA에 진출하겠다고 말한다. “우선 일본 최고의 고교 선수가 돼라.” NBA에서 동양인 선수가 이방인 취급을 받는 현실을 인지한 감독이 서태웅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농구를 만화로 배운 나에게 동양인 선수가 NBA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요원해 보였다. 야오밍·하승진 선수 등이 있었지만 본토 선수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초 린새너티(Linsanity)라는 신드롬을 일으키며 뉴욕 닉스 소속 제러미 린이 급부상했다. 대만계 미국인인 그는 서태웅이 넘볼 수 없었던 NBA의 벽을 실력으로 제압했다. 그의 활약상과 더불어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그는 어떻게 대학 공부를 병행하며 최고의 농구 스타가 됐을까.

 여기엔 미국 대학 교육이 한몫했다. 미국 대학은 특별전형으로 소수인종을 비롯해 학교를 빛낼 유망 운동선수를 선발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입학에 대해 역차별 운운하며 항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 선수는 졸업할 때까지 일반 학생과 같은 조건으로 강의를 듣는다.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는 아무리 운동기능이 뛰어나도 학과 성적이 미달되면 시합에 출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학 측은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에게 개인교습을 받도록 지원한다.

 한국의 대학도 체육특기생을 특별전형으로 뽑지만 입학 후의 상황은 미국 대학과 다르다. 훈련과 대회 출전 때문에 결석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준다. 교수의 재량에 따라 리포트로 시험을 대체하기도 한다. 몇몇 대학에선 경기 성적에 따라 학점의 하한선을 만들어 학업 성취도를 가산해 학점을 매긴다. 입학 후의 학업과정이 일반 학생과 유사한 미국의 대학과 상반된 모습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학생 선수가 수업 대신 대회에 나가 우승하면 국민과 선수 본인의 행복지수를 높인다고. 하지만 교육은 결과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을 미덕으로 여긴다. 정당의 명분이 아무리 좋더라도 투표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면 민주주의의 의미가 바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이제껏 대학은 유명 선수를 데려오는 데 급급했지 학생 선수가 공부할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소홀했다. 그 결과 학생 선수가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모습보다는 ‘선수’로서 학교 홍보 모델로 등장하는 모습이 부각됐다.

 김연아는 억울하겠지만 유명 선수의 학업을 의심하는 눈길들이 있다. 그의 교생실습이 ‘쇼’처럼 비친 이유는 교육의 절차적 정당성을 외면한 대학의 책임이 크다. 대중이 제러미 린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농구 실력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공부한 노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대학스포츠를 교육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 미국의 교육방식이 뒷받침됐다. 한국의 대학이 체육특기생을 모델로 삼아 ‘쇼’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허미연 고려대 영어교육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