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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조 할인점 시장 지각변동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월30일 신라호텔 2층의 다이너스티홀은 하루종일 떠들썩했다. 삼성물산과 영국 테스코사가 합작한 삼성테스코의 기업설명회를 하는 자리였다. 이승한 사장 등 임직원 5백여 명이 캐주얼 복장으로 참여해 지난해 성공적인 실적을 자축하고 ‘월드 베스트 스토어(world best store)’를 새해 비전으로 선포했다.
삼성테스코가 운영하는 홈플러스는 지난해 8월30일부터 석 달 만에 5개 점포를 잇따라 개점, 할인점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서구식 창고형 할인점이 아닌 한국 실정에 맞는 가치점(value store)을 내세워 오픈할 때마다 매출에서 업계 신기록을 양산했다. 지난 10월 오픈한 영통점의 경우 개점 당일 매출이 12억4천만원으로 백화점 수준을 능가했다. 홈플러스는 올해 6개점을 새로 열어 점포수를 13개로 늘린다. 매출도 지난해 6천5백억원에서 대폭 늘어난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할인점 시장은 국내외 거대 자본들이 맞붙는 글로벌 격전지가 되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 다국적 유통기업과 토종기업들이 잇따라 시장에 뛰어들어 대혼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할인점의 시장규모는 10조원을 돌파했고 대형(영업면적 2천 평 이상) 점포 수도 1백50개를 넘었다. 올해는 시장 규모가 13조원, 점포 수는 2백 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 전망치). 올해에만 50~60개가 전국 각지에 새로 생긴다.

2001년 2월 현재 할인점 시장은 선두인 신세계이마트를 비롯해 ‘토종’업체인 롯데마그넷, 합작사인 삼성테스코, 외국계인 까르푸와 월마트 등 ‘빅5’간 대결로 좁혀진 상태. 지난 93년 국내에서 1호 할인점인 창동점을 연 신세계이마트가 한발 앞서고 있는 가운데 2위 자리를 놓고 각축전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소비시장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선두그룹에서 낙오되면 도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할인점 사업에 뛰어든 롯데마그넷은 지난해에만 9개 할인점을 오픈했다. 올해는 12개 점포를 추가로 개설해 금년 말까지 점포망을 29개로 확대해 까르푸(25개 예상)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설 계획이다. 강성득 롯데마그넷 본부장은 “1월을 기점으로 매출에서 까르푸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으며 3년 안에 선두를 차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국내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해온 프랑스계 할인점 까르푸는 이달 말 한국현지법인 사장 교체를 계기로 다시 공세에 나선다. 지난 2년간의 시장 진입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판단 아래 토종화 전략으로 시장을 파고들 계획. 지난해 10개 점포를 확장해 20개 점포망을 구축한 까르푸는 최근 신설 점포를 중심으로 한국인 점장을 잇따라 임명하고 현지 상품 구매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가고 있다. 까르푸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한국 시장 공략에 성공적이었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선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98년 7월 마크로 4개 매장을 인수해 한국 시장에 진출한 후 2년 동안 겨우 2개 점포를 신설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예상외로 한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월마트는 연초 킴스클럽 화정점을 인수해 다시 업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한국 시장 철수설까지 흘러나왔던 월마트가 화정점을 전격 인수한 것에 대해 경쟁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월마트 관계자는 “아직은 시장조사 단계로 서두르지 않는다”면서 태연한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월마트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내 대기업을 통째로 인수할 여력도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점포 수 확장보다는 대규모의 M&A를 통해 일순간에 전세를 바꿔 언제든지 선두업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한국 할인점 시장에 국내외 대기업들이 열을 내고 있는 것은 성장 잠재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성숙기에 접어든 백화점 시장은 한 자릿수의 낮은 성장률을 보인 반면 할인점 시장은 93년 초창기 1백억원대의 시장에서 7년 만에 1천 배 수준인 10조원 시장으로 급팽창했다. 지난해 문을 연 홈플러스 안산점이나 영통점의 경우 소비자들이 한 번 물건을 구입할 때 지불하는 평균 금액인 객단가가 6만원선이나 된다. 웬만한 지방 백화점보다 훨씬 높다. 최고급 백화점으로 알려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이 8만원(2001년 1월 기준)선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물건을 값싸게 팔고 서비스도 잘해야 하는 한국식 할인점의 수익성이 높다는데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할인점의 판매관리 비용이 백화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상품 회전율은 2.3배 높기 때문에 수익성이 높다는 게 할인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할인점 시장에서 25%선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신세계의 경우 올들어서만 주가가 4만원선에서 6만원선으로 50% 가량 높아졌다. ING베어링 SG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들은 최근 신세계에 대해 매수추천을 내면서 그 이유로 이마트의 성장 잠재력을 첫번째로 꼽았다. 외국자본들도 할인점 시장의 잠재력을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시장 관계자들은 예상외로 할인점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당초 예상한 2003년보다 빠른 올해 말이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대로 국내외의 대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점포확장을 계속할 경우 모든 업체들이 생존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최근 한 외국계 유통 컨설팅업체는 할인점 시장과 관련, 조만간 ‘빅5’체제에서 ‘빅3’체제로 구조재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낮은 가격과 백화점 수준으로 서비스 경쟁을 지속할 경우 공멸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금력이 강한 대형 업체 중심으로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국경제 유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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