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⑩ 송시열의 남간정사와 화양동 계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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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서재는 송시열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했던 아담한 건물로 충북 괴산군 화양계곡에 지어졌다. [사진= 이영관 교수]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우암(尤庵) 송시열은 1607년 충청도 옥천군의 구룡촌 외가에서 태어났다. 27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면서 주목을 받아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고, 효종 때에는 북벌계획을 주도했으며 우의정을 역임했다.

대전 동구에는 송시열이 제자들과 함께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병자호란 때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정책을 구상했던 남간정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낮은 야산 기슭에 남향으로 배치됐는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건물의 대청 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들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자 했던 우암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못과 어우러진 남간정사는 계절의 변화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인근의 유물관에는 1658년 효종이 우암에게 하사한 담비 털옷인 초의(貂衣)를 전시하고 있는데, 고급코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밍크코트와 거의 흡사한 모습이다.

또한 송시열은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화양계곡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화양동의 매력적인 풍광에 매료된 그는 주자가 사랑했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 따 경천벽·운영담·읍궁암·금사담·첨성대·능운대·와룡암·학소대·파천 등의 이름을 지으면서 화양구곡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의 명사들은 경치 좋은 곳에 생활하면서 비경을 시문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우암은 화양구곡에 관련된 글을 남기지 않았다. 단지 그는 주자가 사랑했던 무이구곡을 모방해 화양동에 9곡을 설정했을 뿐이다. 아마도 자신이 흠모했던 주자의 ‘무이구곡가’에 누가 될까봐 그리 했던 것 같다.

불행히도 그는 1689년 6월에 귀양길에서 돌아오다 전라도 정읍에서 사사됐고, 5년 뒤에 복권되자 사람들은 앞 다투어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경기 유생들의 건의로 수원에, 호남 유생들의 건의로 정읍에, 그리고 충주 유생들의 건의로 누암에 송시열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이 세워졌다. 화양서원은 늦게 추진되는 바람에 중복해 설립하는 것을 금한다는 조례에 따라 예조는 화양서원의 설립을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의정을 지낸 이여가 “우암은 심히 화양의 수석을 사랑해 거기에 집을 짓고 장수강도(藏修講道)한 고장이니 실로 주자의 무이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우암의 서원을 짓는 것은 다른 곳에 비해 중요한 의의가 있으니 중첩돼 그 곳에 서원을 짓는 것만은 허락해야 합니다”라는 상소를 올려 어렵게 화양서원이 세워지게 됐다.

화양구곡으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자 계곡물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다리가 불현듯 나타났다. ‘깨끗한 물이 소를 이루어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은 산 속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큰 규모로, 수영을 해도 될 만큼 풍요로움이 넘실거린다.

화양서원 터와 만동묘 터에도 가보았다. 화양서원은 우암 선생이 은거했던 곳에 세워졌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옛 모습을 회복한 화양서원에서 계곡을 따라 금사담에 다다르자 화양동을 굽어보고 있는 암서재가 시야에 들어왔다. 금사담이 화양구곡을 대표하는 명소가 된 것은 암서재 때문일 게다. 암서재가 없는 금사담을 상상해 보면 단지 평범한 계곡의 지류에 불과하다.

화양구곡에는 여름철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방문자들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며 무더위를 식힌다. 그러나 가을과 겨울에 체험하는 화양구곡은 무더운 여름철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신비함이 술술 배어 나오는 환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이영관 교수는 1964년 충남 아산 출생,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한국의 아름다운 마을』 등이 있다.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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