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교생 76명 모두 동시 쓰고 외우며 집중력·사고력 키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 교동초 학생들이 정재규 교장(가운데)과 시집 『시가 뭐고 동시가 뭐길래』를 보여주며 자랑하고 있다.

전교생이 76명에 불과한 재개발 지역의 학교가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이하 성취도 평가)에서 2010년 전국 1718위에서 지난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부산 교동초가 그 주인공. 한때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감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이젠 학생과 학부모들이 찾아오는 학교가 됐다. 지난 1년여 동안 어떤 기적이 벌어졌는지 지난달 25일 교동초를 찾아갔다.

이 학교는 한때 1200명에 달하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2005년 명륜동 지역 주민들이 재개발에 쫓겨 모두 떠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마을이 텅 비고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황폐화가 심화됐다. 교육환경이 위협받자 전학이 이어졌고 2006년 386명이었던 전교생이 2008년 310명, 2010년엔 142명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폐교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교사들도 ‘라’급지(교통과 근무환경이 열악한 지역) 학교지만 인센티브가 없고 과중한 업무 부담 때문에 근무를 꺼렸다.

1200명 달했던 학교 76명으로 줄어 폐교 걱정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정재규 교장이 있다. 그는 부산시교육청 공보담당관실 장학사로 근무하던 중 공모형 교장을 초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러 학교 중 유독 부산 교동초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재개발 지역에 학생수가 줄고 폐교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했지만 고민 없이 지원했다. 열정을 쏟으면 바꿀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다고 생각했다.

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학교에 활기를 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재개발 지역의 황폐한 정서가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했다. 동시 외우기를 시작한 이유다.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외워야 할 30개의 동시를 선정했다. 교장실에서 점심시간마다 5명의 아이가 한 조를 이뤄 동시를 암송했다. 암송이 끝난 뒤엔 자신들이 느꼈던 점을 이야기하고 정 교장이 해설을 담당했다. 처음엔 동시를 외우는 게 쉽지 않았다.

6학년 유승오군은 “외우는 것이 귀찮았어요. 시간도 많이 걸렸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동시 한 편을 외우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특히 중간중간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뜻 모를 비유적 표현들이 걸렸다. 그때마다 인터넷을 찾고 사전을 뒤져가며 뜻을 이해했다. 6학년 원지희양은 “어느 순간부터 외우는 시간이 30분으로 줄어들더니 지금은 10분이면 한 편을 충분히 외운다”고 자랑했다.

암기력이 늘어나자 실력이 문장력으로 이어졌다. 성적도 덩달아 올랐다. 유군은 평균 60점대에서 80점대로 올랐다. 특히 사회과목의 성적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동시를 외우다 보니 어려웠던 서술형 평가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6학년 공지형군도 5학년 때 전 과목 평균이 70점대였지만 6학년 들어 90점대로 상승했다.

동시 외우기가 정착되자 교장은 학생들에게 직접 시를 써보도록 했다. 점심시간 마다 교장실에서 자신들이 쓴 동시를 발표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1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정 교장은 “성취도 평가를 대비하기 위해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며 “평소 동시 외우기와 쓰기로 아이들의 집중력과 사고력이 훈련되다 보니 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같다”고 말했다. 올 2월에는 전교생의 동시를 모아 『시가 뭐고 동시가 뭐길래』를 출판했다. 기획단계부터 아이들이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도록 서점 판매를 염두에 뒀다. 수익금은 전액 재학생 복지를 위해 사용된다.
 
젓가락 면허, 19단 암기 등 맞춤형 교육 운영

학생 수 감소로 폐교 논의가 오갔던 부산 교동초는 오히려 이를 장점으로 활용했다. 교사들은 아이들 하나 하나의 특성을 감안해 지도가 가능해졌다. 교직원과 학생 간에 유대감도 친밀해졌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젓가락 면허증과 19단 외우기가 대표적이다. 요즘 아이들이 식생활 변화로 젓가락 사용이 서투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정 교장은 “젓가락은 눈으로 작은 물체를 보고 손으로 집어 올리기 때문에 집중력과 근육조절능력, 협응력을 발달시키는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젓가락과 19단 외우기에서 단계별 시험에 통과하면 면허증도 발급한다. 여기서 아이들은 성취감을 맛봤다.

학교 차원의 노력은 학교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탓에 안전한 등·하교가 우선시돼야 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나온 대안이 스쿨버스다. 부산 교동초는 ‘워킹 스쿨버스’를 운행한다.

도우미와 걸어서 통학하는 개념이다. 개인별로 정해진 등·하교 시간에 안전도우미가 집으로 방문한다. 이들 도우미가 코스별로 돌면서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집까지 인솔한다. 이를 위해 동래구청에서 4명을 지원받았다. 학교가 위치한 산비탈까지 함께 걷다 보니 기초체력도 키울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늘어났다.

이는 동래구 체력검사에서 초등학교 1위를 차지하는 밑거름이 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는 매달 전교생이 참석하는 생일축하 행사에서 빛을 발한다. 생일 케이크와 떡, 제철 과일 등 음식을 서로 나누면서 선·후배 간의 정은 더욱 돈독해진다. 정 교장은 “지난 2년 동안 왕따 같은 불미스러운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며 “전교생이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학교의 모습에 감동한 지역사회의 지원도 잇따랐다. 안전한 학교 만들기를 위해 재개발조합은 경비초소 4곳을 설치했고 동래구 노인회에선 등교와 교통지도를 위해 8명의 인력을 지원했다. 공무연금관리공단은 어린이 안전지킴이로 퇴직공무원 16명을 파견했다.

교동초는 올해 전교생이 참여하는 ‘청솔드림 오케스트라단’을 창설했다. 바이올린을 주축으로 현악기·관악기·타악기를 혼합했다. 교육청에서 8000만원의 예산도 지원받았다. 학생 지도는 신라대 음악학과 장민수 교수가 담당한다. 사연을 전해 듣고 자원봉사자로 나서 매주 금요일마다 학생들을 지도한다. 교동초의 노력이 지역사회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학교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다. 올해 1학년에 입학한 9명 중 3명은 다른 지역에서 교동초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사까지 왔다. 정 교장은 “아직까지 총동창회가 없는 것이 아쉽다”며 “남은 임기 동안 부산 교동초 총동창회 창립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김만식 기자
사진= 김경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