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아들 서면조사 후 전직 딸 소환하자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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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 아들은 서면조사하고, 전직 대통령 딸은 소환조사할 수 있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딸 정연(37)씨의 ‘13억원 밀반출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가 12일 정연씨에게 서면 질의서를 발송했다. 당초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던 검찰은 최근 “결정된 게 없다”며 한발 물러서더니 결국 서면조사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런 ‘급선회’ 배경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 10일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 수사 결과 발표 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백방준)는 피고발인 7명 가운데 김인종(67) 전 청와대 경호처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핵심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 아들 시형(34)씨는 한 차례 서면조사하는 것으로 끝냈다. 시형씨를 소환조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검찰 관계자가 “답변서를 받아보니 아귀가 딱 맞았다. 추궁할 게 없어서 부르지 않았다”고 답한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이 언제부터 당사자 해명을 그대로 수용하는 기관이냐”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연씨에 대한 서면조사 결정이 불과 이틀 전에 수사 결과가 발표된 시형씨 사건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실제로 당초 수사팀은 “정연씨가 13억원의 환치기 밀반출에 가담했거나 미리 알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소환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검찰 수뇌부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어차피 정연씨의 소환조사 자체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고, 시형씨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어 고민 끝에 내린 결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연씨가 2009년 미국 뉴저지주 허드슨클럽 아파트 구입대금 일부인 13억원을 상자에 넣어 아파트 원 주인인 재미동포 경연희(43·여)씨의 국내 지인에게 전달한 사실은 확인됐다. 문제는 이것이 환치기를 통해 미국의 경씨에게 건네진 사실을 정연씨가 알고 있었느냐 여부다. 알고 있었다면 외국환거래법 위반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한 보수단체의 수사의뢰에 따라 사건의 최초 폭로자이자 돈 상자 전달에 관여한 전 미국 카지노 매니저 이달호(45)씨 형제를 불러 조사했다. 또 지난달 귀국한 경씨도 두 차례 조사했다.

 검찰은 정연씨에게 보낸 서면 질의서에 ▶13억원 돈 상자를 전달한 게 맞는지 ▶경씨의 ‘환치기’와 밀반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돈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의 질문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검찰은 정연씨의 서면 진술서 답변이 충분치 않더라도 소환조사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서면 조사는 정연씨를 ‘환치기’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것”이라며 “돈의 출처는 밝혀내기도 어렵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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