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분식 회계란 무엇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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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10여년 전 우리나라에서 셋째로 큰 재벌 대우그룹을 이끌었던 김우중 회장이 쓴 책이에요. 金회장의 진취적인 기상이 물씬 배어 있는 이 책은 출간되자 마자 불티나게 팔렸어요. 金회장은 당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고 수많은 직장인들도 그를 영웅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최근 TV나 신문을 보면 김우중 회장이 나쁜 일을 많이 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죠. 金회장과 함께 회사를 책임졌던 사장님들은 줄줄이 교도소로 갔어요.

왜 그렇게 됐을까요.金회장과 여러 사장들이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회계장부를 분식했다’고 신문에 나오는 얘기를 들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분식’이란 뭘까요. 또 분식은 왜 나쁜 일일까요.

분식(粉飾)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도록 하죠. ‘실제보다 좋게 보이도록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라고 되어 있어요. 우리 어머니들은 얼굴에 ‘분(粉)’이란 화장품을 바른답니다. ‘가루’라는 뜻이에요. 분을 얼굴에 바르는 것은 주름살을 감추고 피부가 젊게 보이게 하려는 것이죠.

따라서 회사가 장부를 분식했다고 하면 장부를 실제보다 좋은 것 처럼 보이게 하려고 ‘분으로 화장을 했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여러분의 어머니가 집에서 가계부를 쓰듯 기업도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며, 빚이 얼마이고,팔다 남은 상품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장부에 적는답니다. 이를 회계장부라고 하죠. 그래야 그 기업이 좋은지 아닌지를 남들이 알 수 있으니까요.

금융감독원에서 대우그룹의 회계장부를 조사해 보니 대우그룹은 1997∼98년 두햇동안 22조9천억원을 분식했다고 합니다. 검찰에서 조사했더니 그 금액은 41조9백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건 무슨 얘기일까요.회사의 모양을 좋게 보이려고 회사의 장부를 조작했다는 것이지요.예를 들어 여러분이 장남감 가게에서 무선으로 조종하는 자동차를 한대 샀다고 해요. 가게 아저씨가 번지르르한 자동차를 내놓고 새차라고 해서 샀는데, 무선이 잘 안듣고 부속품이 5년 이상 된 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기업도 사고 파는 물건이에요. 그런데 돈을 많이 벌었고 재산도 많다고 장부에 적어놓은 것을 보고 주식을 샀는데, 그게 전부 엉터리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은 세 군데 중 한 곳이 이런 식으로 회계처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드러내놓고 거짓말을 하는 셈이지요.

지금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장부가 엉터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어요. 우리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이 되려면 반드시 고쳐야 할 게 분식회계랍니다.

◇분식은 어떻게 할까요=기업이 쓰러지면 장부를 엉터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기아그룹이 그랬고 대우나 동아그룹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회사가 분식을 하는 방법을 크게 세가지입니다. 첫째, 물건을 판 것(매출)이 없는 데도 돈 받을 것(외상채권)이 있는 것처럼 장부에 적는 것이죠. 돈을 받아 다 썼는데도 받을 돈이 있는 것처럼 장부를 안고치는 방법도 있어요.

둘째,남아 있는 자산(재고)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방법이에요. 이미 사용했거나 팔아서 없는 물건을 있다고 장부에 적는 것이죠. 생산하지도 않은 물건을 창고에 쌓아둔 것처럼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헌 기계를 새 것과 맞먹는 값으로 뻥튀기해 장부에 적기도 하죠. 아니면 망가져서 못쓰게 된 기계를 정상적인 가격으로 평가하는 방법도 쓴답니다.

셋째,빚(부채)을 숨기는 방법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다른 곳에 썼으면서도 장부에 올리지 않는 겁니다. 회사 빚이 없다고 속이려는 것이죠. 다른 회사에 빚 보증을 섰다가 그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빚(지급보증채무)을 대신 갚아줘야 하는 경우에도 그 빚을 장부에 안 적는 분식회계가 생길 수 있습니다.

손실이 봤을 때 나중에 생긴 것 처럼 꾸미기 위해 장부에 적는 일을 뒤로 미루는(이연) 방법도 쓴답니다.

◇왜 분식을 하나요=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거짓 장부를 만들어 보여주는 데 대해 별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어요. 좋은 회사로 포장해야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쉽고 주가가 올라가니까요. 회사를 위해서라면 회계장부를 엉터리로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기업의 회계장부는 매년 회계사들이 감사를 하게 되어 있어요. 제대로 작성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죠. 그동안 우리 사회는 회계 감사가 왜 중요한지 잘 몰랐어요.

회계사들은 기업의 거짓말을 감시해야 하는 데도 슬쩍 한쪽 눈을 감아주고 봐 준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정부는 정부대로 기준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고, 은행은 담보만 보고 대출을 해줬으니까 장부가 어떻게 되어 있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답니다.

장부를 엉터리로 적고 이를 대충 눈 감아준 사람들을 처벌하는 일도 소홀했어요. 장부가 엉터리인 기업의 주식을 사서 큰 피해를 보더라도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투자자들은 별로 없었어요. 기업·정부·회계사·은행·투자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이지요.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선 국제기준에 맞도록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기업이 분식을 했을 때는 담당자나 임원 또는 회사 주인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지요. 법률적으로 책임을 묻고 경제적으로도 말이에요. 회계사들이 수시로 회계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엉터리로 작성한 장부를 눈감아 준 회계사를 법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있어야 우리나라 기업의 장부가 정직하고 깨끗하게 쓰여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만 외국인들이 우리 장부를 믿고 우리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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