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24) - 명예와 바꾼 애국심

중앙일보

입력

밥 펠러의 인생을 바꾼 사건은 차안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재계약을 위해 단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펠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진주만 공습'의 뉴스를 듣고, 그 즉시 차를 돌렸다.

공습의 3일후인 1941년 12월11일, 펠러는 2차대전에 지원한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됐다. 당시 작고한 아버지 대신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고 있었던 그는 원래 징집 대상자가 아니었다.

번개같은 강속구와 공포의 커브로 1940년대 빅리그를 호령했던 펠러는 열일곱살이던 193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데뷔했다. 이 17세 소년은 데뷔 첫경기에서 15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한달 후에는 디지 딘이 보유하고 있던 한경기 최다탈삼진기록(17개)의 타이기록을 세웠다.

참전 직전 펠러는 3년동안 평균 25승을 거뒀을 정도로 이미 물이 오를대로 올라 있었다.

전함 알라바마(USS Alabama)호에 배치된 펠러에게 주어진 임무는 40mm 대공포 사수였다. 마운드에서 160km의 강속구를 뿌리던 펠러는 분당 160발이 나가는 이 포로 훗날 5개의 무공훈장을 받게 된다.

1945년까지 이어진 펠러의 군복무는 험난한 모험의 연속이었다. 북해에서는 독일의 U-보트와 맞서 싸웠으며, 태평양에서는 마셜섬 전투, 괌 상륙작전, 도쿄 공습 등 수많은 역사적인 전투에 참가했다.

1945년 8월22일 소집이 해제되자 펠러는 즉시 마운드에 올랐고, 9경기에 출장하여 5승3패 방어율 2.50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72이닝에서 59개의 탈삼진에 그친 사실을 주목하고 '그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듬해인 1946년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펠러는 26승과 함께 348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것은 샌디 쿠펙스에 의해 경신되던 1956년까지 무려 19년간 계속된 한시즌 최다탈삼진기록이었다. 당시 아메리칸리그의 주전타자중 펠러에게 삼진을 당하지 않은 선수는 디트로이트의 바니 매코스키가 유일했다.

펠러는 1956년, 266승162패 2581삼진의 기록으로 은퇴했다.

만약 펠러가 4년동안 전쟁에 나가는 대신 메이저리그를 선택했다면, 그 기간동안 1백승-1천탈삼진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펠러는 역대 다승 순위에서 30위가 아닌 5위를, 탈삼진 순위에서도 18위가 아닌 5위를 차지하게 된다.

"국가에 봉사할 수 있어 행운이었고, 사지가 멀쩡한 채 돌아올 수 있어 감사했다."는 펠러에게 사라진 1백승-1천탈삼진은 결코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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