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규제 불똥…협력 중기 인력감축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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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의무휴무제가 확산되면서 중소 납품업체들이 직원을 줄이고 있다. 10일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4개국어로 된 휴무 안내문이 붙어있다. [조문규 기자]

경기도 여주에서 25년 째 콘칩과 비스킷, 건빵 등을 만드는 중소 제과업체 ㈜미찌유통. 이 회사는 지난 주 전체 직원 100여명 중 파견직 근로자 10여명을 내보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150억원 어치를 납품했다. 전체 매출 350억원의 40%를 넘는 규모다. 그러다 올 4월부터 대형마트들이 월 2회 휴업을 하면서 납품액이 15% 가량 줄었다. 일거리 역시 감소해 우선 파견업체 인력부터 내보냈다.

대형마트에 납품을 하는 중기들이 일자리를 줄이기 시작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 때문에 장사가 안돼서다. 이마트는 1700개 납품 중기의 매출이 의무 휴업 이후 평균 10%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롯데마트 측은 “문을 닫은 3주간 2000여 협력중기들의 매출손실이 18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매출 감소는 인력 감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여주 공장에서 만난 미찌유통 박영주(50) 대표는 “자체 판매 조직이 약한 중소업체는 대형마트 판매 의존도가 높다”며 “그래서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곧바로 매출 감소와 일거리 부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감원 초읽기에 들어간 곳도 있다. 경기 포천의 청우식품은 매출이 줄어 일부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이마트와 손잡고 ‘유별난 스낵 4종(감자 양파 고구마 새우)’을 출시해 주말에만 1만6000봉지가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러자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생산라인을 확장하고 20여명의 직원을 새로 뽑았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이 시작되면서 매출이 25% 이상 줄었다. 청우식품은 지금 생산라인 가동을 멈춘채 새로 뽑은 직원들의 일손을 놀리고 있다. 이 회사 정혁수 부장은 “생산라인 증설비 대출 이자는 계속 나가는 데 매출이 줄면 회사가 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뻔한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인력 감축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는 얘기였다.

대형마트 스스로도 인력을 줄였다. 이마트와 롯데마트ㆍ홈플러스 3사는 영업 시간 축소에 따라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생 3000여명을 내보냈다.

중소 협력업체들의 감원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영업규제를 적용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어 갈수록 많은 대형마트들이 강제 휴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무휴무가 처음 시행된 지난 4월 22일에는 서울 강동구와 전북 전주 등지의 대형마트 116개가 문을 닫았다. 전국 대형마트의 30% 정도였다. 하지만 10일에는 전국 대형마트의 70% 이상인 270개가 영업을 하지 못했다.

한국항공대 이승창(경영학) 교수는 “대형마트 의무 휴무가 중기의 생계형 일자리 축소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지금같은 경제 위기에서 소비를 더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경제 상황에 맞춰 규제를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주=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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