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학자의 동양학 입문서 '공자·노자·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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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의 소개에 앞서 저자 모로하시 데쓰지(1883~1982)의 평생의 역작인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전은 한국은 물론 동양학의 원조인 중국에서도 그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세계적 필독서이다.

동양학 고전의 무수한 어휘의 출전을 40년이란 긴 시간을 투자해 일일이 밝혀낸 이 사전은 20세기 동양학 연구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신간 『공자 노자 석가』는 일본 동양학 연구의 상징적 인물인 그가 꼭 1백세 되던 1982년 자신의 학문적 총재산을 모든 사람이 쉽게 알게 하겠다는 원력으로 쓴 동양학 입문서다.

단 기존의 성과를 적당히 짜깁기하여 낸 흔한 입문서가 아니라 내공이 밑바탕에 흐르는 노작이다. 스타일도 눈여겨 볼 만하다. 동양정신의 세 기둥인 공자.노자.석가 사이에 벌이는 가상토론회 형식이 그것이다. 사회자는 물론 저자 모로하시다.

토론을 풀어가는 방식은 산수(山水)를 좋아하는 자연관이나 꾸밈과 말재주를 싫어하는 인간관에서 세 성인 모두 대체로 공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회통(會通)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핵심이론인 노자의 무(無), 석가의 공(空), 공자의 천(天) 대목에 이르면 격론이 벌어진다.

즉 만물의 움직임의 근원을 무로 보는 노자와 만물의 실상을 고정적 모습으로 보지 않는 석가에 대해 공자가 딴지를 거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노자와 석가가 말하는 형이상학적 담론 대신 인간 현실의 구체적 개선을 강조하는 공자로서는 당연한 지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정신의 핵심인 중용 혹은 중도사상에 이르러 다시 이들은 회통하는 고수의 면모를 보인다.

나아가 인(仁)과 자(慈)와 자비(慈悲)를 강조하는 실천을 마지막 장에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저자의 철학이 지향하는 바를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의 삼교(三敎)에 대한 해석이 모두 사계의 정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측면에선 삼교의 작위적 구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삼교에 대한 대강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믿을 만한 책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낸 후 곧 타계했다. 즉 그의 마지막 작품이 이 책인 셈인데, '쉽게 읽힐 수 있는 양질의 입문서' 가 얼마만큼의 노력 끝에 나올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약관에 대강 쓰는, 그리고 내용은 '짜깁기 입문서' 가 거의 전부인 국내 학계에 귀감이라는 판단은 그 때문이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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