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는 왜 어린 딸을 선택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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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호 32면

“세상을 살면서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가치관·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해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내게는 그런 엄청난 책이 한 권 있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정도 극찬을 받은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볼 만하다. 당신도 정말 오랜만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는 경험을 해볼 것이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14>『이기적 유전자』와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 대학교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1976년 발표한 이 책에서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생명의 진화를 설명했다면, 도킨스는 유전자의 눈으로 이 세상과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닭이 알을 낳는 게 아니라 닭은 이 세상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알 속의 유전자야말로 닭의 진짜 주인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알이 닭을 낳는 것이다.
도킨스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하는 힘을 갖게 된 분자가 원시 대양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 자기 복제자는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운반자까지 만들었다. 자기가 사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생존 기계는 더 커지고 정교해졌다. 개량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흐른 지금 자기 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떼 지어 살면서, 복잡한 간접 경로를 통해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 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다.

“이것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유지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걸어왔다. 이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다.”
여기서 ‘우리’란 인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모든 동식물과 박테리아, 바이러스를 포함한다. 유전자는 박테리아에서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종류의 분자며, 불멸의 존재다. 즉 유전자는 몸이 노쇠하거나 죽기 전에 그들의 몸을 차례로 포기해 버림으로써 세대를 거치면서 몸에서 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유전자가 우리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것인데, 유전자 스스로 직접 로봇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듯 한다는 것이다.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들을 사전에 만들어 최선의 대책을 강구해 두는 방식이다. 가령 북극곰 유전자는 곧 생겨날 생존 기계의 미래가 춥다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두꺼운 모피를 만든다. 또 얼음과 눈 속에서 유리하도록 모피를 백색으로 위장한다. 도킨스는 마지막 장에서 왜 우리는 이렇게 크고 복잡하게 만들어졌느냐고 묻는다. 생물 물질이 왜, 무엇 때문에 모여서 생물체를 구성하느냐는 물음이다. 답은 유전자들의 이익 때문일 것이다. 우리 자신의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라서가 아니라 미래로의 같은 출구, 즉 알이나 정자를 공유하고 있어서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세계는 가장 강하고 재주 있는 자기 복제자로만 채워진다. 어떤 자기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에 달려 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자기 복제자와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다. 결국 여러 생물 개체 속에 자리 잡은 유전자들끼리 서로서로 인과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인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메릴 스트리프가 주연한 영화 ‘소피의 선택’이 떠올랐다. 이 영화의 극적인 장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 소피가 독일군 장교의 강요로 두 아이 중 하나를 가스실로 보내야 하는 순간이다. 소피는 “그러지 말아요(Don’t make me choose)”라고 몇 번이나 사정하다 끝내 딸을 선택한다. 아들을 살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수없이 물었다. 소피는 왜 어린 딸을 선택했을까? 영화에서 소피의 딸은 여섯 살, 아들은 여덟 살 정도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아무래도 여덟 살짜리 남자 아이가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보다 클 것이다. 새들도 먹이가 부족할 때는 가장 강한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약한 새끼는 굶어 죽도록 놔둔다. 소피의 뇌도 이기적 유전자가 만든 것이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살리도록 프로그램을 짜 넣은 것이다. 너무 냉정한가.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영화의 결말에서 소피가 그러듯이 우리의 뇌는 이기적 유전자를 향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더구나 개체가 아닌 인류를 위해 생애를 바친 테레사 수녀 같은 분도 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보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위대함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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