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략 대전환 품질의 위기 넘어 시장 위기 뚫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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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70 ) 삼성전자 회장이 국내외 현 상황을 ‘시장의 위기’로 규정하고, 7일 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최지성(61) 삼성전자 부회장을 임명했다. 미래전략실장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자리다. 최 부회장은 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통이자 영업통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이 돌파력 있고 시장 현장에 강하며 마케팅 전략에 뛰어나 발탁됐다”고 밝혔다. 현 김순택(63) 실장은 건강상 이유로 사임했다. 공석이 된 삼성전자 대표이사에는 권오현(60)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회를 거쳐 선임될 예정이다.

 미래전략실장의 전격적인 교체는 이건희 회장이 지난달 2일부터 3주간 유럽과 일본 시장을 둘러본 직후 이뤄졌다. 이 회장은 귀국하면서 “(유럽을 직접 가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나빴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은 유럽 위기를 직접 돌아본 직후 많은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삼성은 자체적으로도 유럽 위기를 경기 최대 변수로 파악하고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3∼3.5%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망한 3.5∼3.6%보다 낮은 수치다.

 마침 최 부회장이 선임된 6월 7일은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1993년) 19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라”며 과감한 변화를 주문했다.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 때 ‘품질의 위기’를 지적했다면, 이번엔 ‘시장의 위기’를 주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회장은 유럽 출장 직후부터 ‘우리에게 당장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다. 여러 실적 지표가 더 나쁘게 보이지 않는 게 걱정’이라며 위기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니와 샤프처럼 한때 삼성전자에는 형님 격이었던 회사들이 지금은 삼성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진 점에서도 이 회장이 깨달은 바가 있는 것 같다”며 “자칫 ‘잘나가는 삼성’이라는 교만에 빠지려는 조직에 채찍질을 가하는 의미도 있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격적인 인사를 두고 그룹 내부에선 이 회장이 ‘신경영 선언’에 준할 만한 핵심적인 변화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은 특히 유럽 출장을 다녀와서 미래전략실에 많은 주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 부회장 발탁 배경에는 휴대전화와 TV를 세계 정상급으로 만든 탄탄한 실적과 공격적인 마케팅에서 보듯, 앞으로 있을 이 회장의 ‘제2 신경영 선언’ 실무 적임자란 점이 고려됐다고 볼 수 있다. ‘최지성 카드’를 활용해 시장의 위기를 넘는다는 전략이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지금의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할 사람으로 최 부회장만 한 사람이 없다는 게 그룹 내 평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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