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부신' 사태, 채권단이 봉인가

중앙일보

입력

한국부동산신탁(한부신)의 처리 문제를 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우왕좌왕이다.

"계약자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 고 주장하던 정부가 엊그제 법정관리 6개월 유예로 돌아섰다.

이렇게 시간을 벌어 놓고 처리 방안을 논의하며 손실 부담 비율을 합의토록 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미 부도가 나 있는 상태인지라 공사도 계속 하고 직원 월급도 줄 생각이라면 채권단의 추가 지원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원리금 상환 유예와 출자 전환.신규 자금 지원 등의 사적 화의를 추진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도 있다.

사실이라면 정말 무책임한 정치권과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채권단의 희생만 강요하는, 이런 식의 인기 영합적인 해법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문제가 어려울수록 원칙대로 풀어야 한다.

한부신은 정부가 출자했고, 낙하산 인사 등을 통해 사실상 경영한 기업이므로 이제까지 정부가 부실기업을 처리해온 방식대로 풀면 된다.

정부가 대주주에 사재 출연을 요구했듯 정부 역시 최대한 출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부실 책임 관련자들의 처벌과 재산 환수는 물론이다. 채권단은 자율적으로 기업을 실사해 회수 가능 여부를 판정하고 그에 따라 지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회생 가능한 사업장은 계약 이전(P&A)방식으로 넘기고 불가능한 사업장은 청산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손실 발생이 필연적이라면, 그때는 손실 분담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생략한 채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다가 채권단.계약자.건설사들만의 손실 분담을 강조하니 설득이 될 리가 있겠는가.

부실 경영에 가장 책임이 있는 정부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자율 합의를 유도하겠다는 발상도 말이 안되지만, 채권단의 '무조건적' 희생을 통해 계약자와 건설사들의 손실을 보전하려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다.

채권단은 결코 봉이 아니다. 또 기업 실사를 통해 한부신의 부실 원인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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