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아시아 진군 막기 … 손잡은 후진타오·푸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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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일 오후 베이징(北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이 앞으로 국제문제는 물론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아시아를 크게 중시하는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되며, 향후 미국 주도의 국제 정세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푸틴은 6~7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12차 정상회의에 참석차 중국을 방문 중인데, 2000년 이후 아홉 번째 중국 방문이다. 푸틴은 지난달 7일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해외 국빈방문국으로 중국을 선택해 앞으로 미국보다 중국을 더 중시하는 외교를 강하게 시사했다. 지난달 18~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는 미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참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대신 참석했었다.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후 주석은 “양국이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과 국제문제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양국 관계가 유례없는 수준과 질적 단계에 도달했다”며 “러시아와 중국은 국제무대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기본적 이해가 폭넓게 일치한다”고 말했다.

 이날 양국 정상은 ‘전면적이고 대등한 신뢰 파트너십과 전략적 협력에 관한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또 에너지·금융 등 12개 분야의 협력 방안에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통신은 중국 톈완(田灣) 원자력발전소 3, 4호기 원자로 건설에 러시아가 적극 참여한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 간 협정서에 가조인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러시아의 기술지원을 받아 장쑤(江蘇)성 롄윈강(連雲港)의 톈완 원전 1, 2호기를 완공했고 추가로 3, 4호기 건설을 추진 중이다.

 가격 문제로 난항을 겪어온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중국 공급 문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긍정적 방향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30년간 680억㎥(약 1조 달러어치)의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다.

 중·러 양국의 대대적 협력 강화는 상당 부분 예견됐다. 푸틴 대통령이 5일 인민일보(人民日報)에 낸 ‘러시아와 중국: 협력 신천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 그런 의지가 담겼다. 그는 기고문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참여와 두 나라의 이익이 고려되지 않는 어떤 국제문제도 논의되고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과 중동·북아프리카·시리아·아프가니스탄·한반도와 이란 핵 문제 등에 대해 공통된 전략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이 만난 시점은 미국 외교전략축의 아시아 이동과 맞물려 있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인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해 “2020년까지 미 해군 전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겠다”고 밝혔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중·러 양국은 최근 들어 다양한 국제문제에서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예컨대 양국 정상은 북한 핵 문제와 이란 핵 개발, 시리아의 훌라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대화를 통한 해결 원칙에 합의했다.

 청궈핑(程國平)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4일 “향후 10년간 SCO 회원국들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버금가는 지역안보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중앙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신뢰 구축을 목적으로 1996년 출범했다. 회원국은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6개국이다. 매년 한 차례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번 베이징 정상회의에는 6개 회원국 외에도 인도·파키스탄·이란·몽골이 옵서버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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