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 입고… 말 달리고… '여성 만세'

중앙일보

입력

'여자 목소리가 담 밖을 넘어서는 안된다' 는 조선시대 경구는 금기시 된지 오래다. 그런데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형사극에서도 갑옷을 걸치고 전쟁터에 나서는 등 '맹렬 여성' 들이 인기다.

30~40대 여성 시청자들이 사극에 관심을 보이자 방송사들이 최근 앞다퉈 역사 속의 강한 여인들을 발굴해내고 있는 것이다.

KBS1의 대형 사극 '태조 왕건' .초반에 남자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던 이 드라마는 얼마 전 왕건의 둘째 부인 (염정아) 이 갑옷을 입은 채 말을 타고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이에 힘입어 여성 시청자의 비율이 50%에 육박하면서 시청률도 함께 올랐다.

안영동 책임 프로듀서는 "사극 하면 흔히 떠오르는 베갯머리 송사를 벗어난 화면에 시청자들이 신선감을 느끼는 것 같다" 고 인기배경을 설명했다.

비록 정사 (正史)에는 없지만 조선조 이전에 오랜 세월 동안 힘들게 살았을 법한 한국 여성들의 활달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는 시각이 있다. 최근 남녀 성차별이 허물어지는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

SBS가 5일 첫 방송한 '여인천하' 와 KBS2가 4월 방송 예정인 '명성황후' 에서 이같은 흐름은 더 강해진다. 이들 드라마에선 아예 여성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선다.

'여인천하' 에선 관비의 딸로 태어나 정경부인이 된 정난정 (강수연) 이 중종 비 (妃) 인 문정왕후 (전인화) 의 장기 집권을 '충성스럽게' 돕는다.

또 '명성황후' 는 시아버지 대원군 (유동근) 으로부터 정권을 뺏으려고 노력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 때문에 '여인천하' 의 극중 흐름은 월탄 박종화의 원작과 다르다. 월탄은 1958년 선풍적 화제를 불러모았던 원작에서 중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후궁들의 음모와 암투를 생생하게 그려 당시 자유당 정권 말기의 치맛바람을 고발하고 비판하려 했다.

김재형PD (65) 는 그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후궁들의 암투를 소설에서 통속적 재미로 썼듯 드라마에선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장치로 문정왕후의 정치적 행위를 활용할 것이다.
"
몇년 전 KBS1의 '용의 눈물' 에 나온 태종의 비 (최명길) 나 '왕과 비' 에 나온 수양대군 아들의 비 (채시라)가 보여준 여인들의 극중 성격도 강했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의 흐름과는 달리 궁궐 안에서 벌어진 암투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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