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우중회장이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입력

대우그룹이 회계 내용을 조작해 거액을 불법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나 경영진과 회계사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미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특별 감리를 통해 대규모 분식회계를 적발하고 이를 검찰에 고발했었기 때문에 대우그룹 부실 수사는 예정됐던 일이긴 하지만 분식회계나 횡령 비자금 규모가 엄청난 데다 그 수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새삼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대우그룹의 부실 회계 규모는 22조9천억원이다.

이 과정에서 공인회계사는 대우그룹의 회계 조작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4억7천만원을 챙겼다는 것이다.

또 김우중(金宇中)전 회장은 영국에 비밀계좌를 개설하고 해외 차입금 등을 빼돌려 10조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고 있다.

우선 부실 규모가 우리나라 올해 예산의 5분의1쯤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숫자라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지난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물량 위주.성장 제일주의 기업 경영의 결과다.

부실 경영.적자 누적의 부실 기업을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방법으로 우량 기업처럼 만들어 억지로 대외신인도를 높이고 자금을 차입했으니 이만큼 버틴 것이 신기할 정도다.

또 이같은 대규모 분식회계가 몇년씩 지속된 것도 의문이다. 감독 관청이나 금융기관이 이를 감쪽같이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재벌 오너의 황제 경영이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전문 경영인이 金회장의 지시 한마디에 불법인 줄 알면서도 분식회계를 일삼았다는 것도 문제다.

대우그룹 사태가 기업 회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회계를 조작하는 기업은 나라 전체의 신인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바로 사회의 공적(公敵)이다.

더구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까지 투입하는 지경에 이른 데 대해서는 광범위하고 엄정한 관계자 문책이 따라야 한다. 분식회계에 관여한 대우 임직원들을 처벌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편 대우그룹 사태에 가장 책임이 큰 김우중 전 회장이 해외를 떠돌며 수사를 기피하는 것은 대기업 총수답지 못한 행동이다.

자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전문 경영인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고 있으니 하루 빨리 귀국해 진실을 밝히고 위법 사실에 대해서는 응분의 처벌을 받는 게 올바른 처신일 것이다.

특히 대규모 비자금 부분은 金전회장만이 풀 수 있는 의혹이 아닌가.

비자금 의혹은 정치권 비리와 얽혀 있을 가능성이 있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부실 회계 내용은 이미 금감원이 전모를 밝혀냈으므로 대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비자금 쪽에 집중하는 게 정도(正道)다. 성역없는 수사로 정경 유착 부분을 샅샅이 밝혀내는 것이 검찰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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