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구를 위한 '현대 살리기' 인가

중앙일보

입력

정부의 현대건설 살리기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해외 차입 지급보증 등 신규 자금지원을 제공키로 하는가 하면 진념(陳稔)경제부총리는 출자 전환 가능성도 내비친다.

마치 정부.채권단이 현대건설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분위기다.

현대건설이 잘못됐을 경우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워낙 커 어쩔 수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런 판단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이는 정책의 신뢰성.형평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는다.

또 이 결정이 순수하게 경제적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 이런다고 과연 현대건설이 살아날 수 있는지, 누구를 위한 지원인지 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11.3 부실 기업 퇴출 때 현대건설에 대한 신규 지원은 없다고 발표했다.

불과 두달여 만에 방침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거짓말을 한 것인가. 시중에는 이렇게 돈을 쏟아부으면 못 살아날 기업이 어디 있느냐는 비아냥이 많다. 정부는 경제적 충격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결국 '대마불사(大馬不死)' 의 신화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 아닌가.

행여 대북사업 등 '비경제적인 요인' 이 고려됐다면 정말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고도 해외 수주가 부진하고 자력 회생이 어려운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점이다. 그때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온다. 장관 한 두명 간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는가.

현대에 대한 자산 실사(實査)를 한다니 정말 투명하고 철저하게 진행해 정책 결정의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의지가 확고하다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할 게 아니라 이런 의문에 대해 투명하고 분명하게 국민을 납득시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의혹을 씻고 시장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설사 회생의 길을 택하더라도 국가 경제와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몇가지 전제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우선 강력한 자구노력이 따라야 한다. 현대건설은 지난해에도 수차 자구계획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스스로의 회생 노력 없이는 이번 지원 역시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자산 매각이나 인력.비용 감축은 기본이고, 수익성 낮은 국내 부문은 떼내 덩치를 줄이는 등 획기적인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현대 살리기는 기업 회생에 초점이 맞춰져야지, 회장 한 사람의 보호 차원으로 변질돼서는 안된다. 정부는 이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 경제를 내세우지만 현대 문제에 관한 한 국민이나 시장의 시각은 의혹 투성이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 인수도 사실상 현대 계열사를 겨냥한 것이고, 이번 역시 극히 예외적이다.

정부는 이런 결정들이 모두 국가 경제와 국민을 담보로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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