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차에 건보료 … 18년 된 생업용 다마스에도 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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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김명수(45)씨는 최근 영업난을 벗어나보려고 빚까지 얻어 큰길가로 가게를 옮겼다. 36㎡ 규모의 반지하 빌라를 담보로 4500만원을 빌렸다. 김씨 재산은 빌라 외에 장보기와 배달용으로 쓰는 다마스 승합차(800㏄·1994년식) 한 대가 전부다. 요즘 장사가 안돼 월 500만원을 못 번다. 재료비·임대료 등을 제하면 적자다.

 김씨가 내는 한 달 건보료는 7만6000원이다. 빌라와 승합차에 부과된 액수다. 이마저 석 달 연체했다. 김씨는 “담보 잡힌 빌라에 건보료를 매기는 것도 화가 나는데 생업용 차에까지 건보료를 물리는 건 너무 심하지 않으냐”고 토로했다.

 건보 지역가입자들이 재산 건보료 못지않게 불만을 표하는 게 자동차 건보료다. 차 건보료는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을 도입할 때부터 있었다. 당시 ‘차가 있으면 형편이 좋다’라는 인식을 반영한 조치였다. 89년에 자동차는 266만 대였다. 98년 건강보험 통합 때 배기량과 연식을 따져 28개의 건보료 테이블로 나눴고 지금도 이 기준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자동차 보급대수는 1843만 대로 가구당 한 대꼴로 사실상 생필품이 됐다. ‘차가 있으면 형편이 좋다’는 20여 년 전 인식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크다. 자동차에 건보료를 물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여전히 소형 트럭·승합차 같은 생업용 차량에도 건보료를 물린다. 적게는 6630원에서 많게는 7만3270원이다. 배기량이 작을수록, 오래될수록 액수가 적다. 김씨의 다마스는 월 6630원이다. 폐차 직전의 차에 건보료를 매기니 불만이 엄청나다.

 과일·생선 행상이나 배달용으로 주로 쓰이는 1t 트럭 소유자들도 불만이 많다. 경기도 안산의 김모(45)씨는 2010년에 구입한 1t 트럭에 1만원 가까운 건보료를 문다.

 차량 가격은 따지지 않고 배기량만을 기준으로 하는 점도 문제다. 또 9년 넘은 차량이면 10년이든 20년이든 상관 없이 건보료가 동일한 점도 불만을 사고 있다. 배기량이 2000cc인 독일산 벤츠(6500만원)와 국산 로체(1700만원)의 건보료가 같다. 배기량이 큰 국산 중형차가 가격은 더 비싼 소형 외제차보다 건보료를 더 낸다. 건보 지역가입자가 보유한 외제차는 11만6221대(국산차 409만9503대)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재산가치가 낮은 노후차량과 생계용 화물차의 건보료를 낮추거나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출고된 지 12~15년 차량은 절반으로 깎아주고 15년 이상은 면제하는 방안 등 몇 가지 대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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