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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새 국내 태양전지업체 9곳 중 8곳 쓰러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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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에너지 부족 시대에 한 줄기 ‘빛’이 돼줄 것 같았던 태양광 사업에 그늘이 드리웠다. 세계 상위권 태양광 발전설비 업체들이 경영난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를 한 기업들로서는 ‘쥐구멍에 볕 들 날’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태양광 발전설비의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세계 2위 생산업체 OCI는 지난달 18일 추가로 건설 중인 두 개의 공장에 대한 투자를 잠정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는 “유럽 재정위기, 태양광산업 시황 변동 등 악화된 사업환경과 투자 효율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OCI는 애초 1조6000억원을 투자해 군산 4공장(2만t)과 1조8000억원을 투자해 새만금 5공장(2만4000t)을 건설해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을 8만6000t까지 확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폴리실리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0년 하반기 ㎏당 80달러 내외였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올해 초 30달러에 머물다가 3일 현재 24달러까지로 내려갔다. 이에 연동해 OCI 실적도 급격히 안 좋아졌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5% 하락한 1018억8100만원에 불과했다.

 각광받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던 태양광 산업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중국 업체들이 투자를 확대하며 덩치를 키우자 국내 업체들은 설비투자가 많이 들어가면서 부가가치도 큰 소재나 전지 분야 설비증설 경쟁에 나섰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된 격이다.

 ◆수요 정체에 생산 시설 남아돌아=태양광 업계는 “너무나 운이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미래의 먹거리’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투자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수요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업체들의 경쟁적인 설비 증설로 현재 태양광 전지 생산능력은 55.1GW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소비량은 지난해 27.8GW에서 올해 28.5GW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비해 생산능력은 55.1GW에 달해 실제 생산을 크게 앞서고 있다. 무려 22.6GW의 과잉설비투자가 나타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태양광 발전 관련 부품들의 가격 하락이 이어졌다. 특히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들에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정부가 준 보조금은 200억 유로(약 29조원)나 됐다. 이는 관련 부품들의 가격을 30% 정도 끌어내리는 효과를 냈다. 태양광 발전시스템 단가의 약 50%를 차지하는 모듈 가격은 지난해 초 W당 1.6달러 수준에서 최근엔 0.8달러대까지 내려갔다. 모듈을 생산하는 현대중공업·LG전자·삼성SDI 등 국내 기업들이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태양광 산업의 쌀’ 폴리실리콘 가격 역시 크게 떨어지면서 이를 생산하는 OCI·KCC·웅진폴리실리콘의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투자 멈추고, 공장 가동 중단하고=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은 업계의 구조조정을 불러왔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태양광 시장에서 인수합병(M&A)이 약 210건이나 발생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국 경제의 미래”라고 치켜세웠던 미 태양전지업체인 솔린드라가 파산신청을 하고, 지난해 세계 태양전지업체 1위에 오른 퍼스트솔라는 전체 인력의 30%에 해당하는 직원 2000명을 줄이기로 했다. 글로벌 2위의 잉곳·웨이퍼 업체인 중국의 LDK도 3년 이하 입사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인원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중소 업체들은 2010년부터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최근 2년 새에만 태양전지업체 9곳 중 8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부터는 대기업들까지 주춤거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할 계획이었던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건설 계획을 포기했다. KCC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충남 대죽산업단지 폴리실리콘 공장(연산 3000t) 가동을 중단해 현재까지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이 회사는 2010년 2월 연산 6000t 규모의 상업생산에 돌입해 향후 생산규모를 연산 1만8000t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 발표 시 폴리실리콘 공장의 설비가치(3237억원)를 전액 손실처리했다. 사실상 포기로 비춰진다. 폴리실리콘 사업 진출을 발표했던 LG화학의 경우 역시 일시 보류를 결정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약 5000억원을 투자해 여수 공장 부지에 연산 5000t 규모의 폴리실리콘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15년 가야 수급 균형”=태양광 업계의 전반적인 실적 개선은 내년 하반기께 이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태양광발전을 앞서 독려하던 독일마저 최근 보조금을 30%가량 깎는 등 당분간은 세계 최대 태양광 시장인 유럽의 수요가 경기침체와 정부의 보조금 축소 탓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강정화 박사는 “생산량과 소비량의 산술적인 균형은 2015년 에 현재의 수요와 공급 중간선인 40GW선에 맞춰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업체들 간 합종연횡과 구조조정 역시 내년이면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동시에 기술력이 우수한 일부 선두업체만 살아남는 ‘치킨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정헌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각 부품생산부터 발전까지 수직계열화를 하거나, 생산비용을 줄일 수 없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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